어디로 갔을까요

인천 양키시장 오성극장

by 종이소리

인천의 양키시장 입구에 위치한 오성극장 간판 프레임을 마주한 순간,

나는 문득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레르 다라고(Carrer d'Aragó) 255번지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한동안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카탈루냐의 혼을 지닌 화가,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àpies)의

작품, ‘구름과 의자(Núvol i cadira)’가

설치된 그의 박물관 옥상을 올려다보던

그날처럼, 하염없이 빛나는 눈을 하고서.

바르셀로나 아라곤 거리에서 2023

'감탄'이라는 이름의 정적 속에서,

무엇인가 마음 깊숙이 벅차 오르던

그날처럼 사뭇 상기된 채였다.


기이하면서도 매혹적인 그 조형물이,

한순간 오성극장 건물 위

간판 프레임과 겹쳐 보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텅 빈 오성극장

간판 프레임 앞에서,

나는 현대 미술의 상징을

떠올렸을까.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구조물 하나가 아니라,

안토니 타피에스의 작품,

‘구름과 의자'가 품고 있는

장소성, 역사성, 정체성과

닮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적 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내가

그 남겨진 철골 프레임을

찬란한 선과 면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비록, 늙고 삭은 프레임이지만

사라질 이름의 잔재가 아니라

장소성을 이룬 시간의 뼈대이자,

정서의 실루엣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폐허 이후의 잔상: 사라짐을 기억하는 구조물]


▪︎타피에스의 ‘구름과 의자’는 ▪︎바르셀로나의 옛 건물 위,

▪︎오래된 벽돌 벽을 배경으로 솟구친 ▪︎철사의 조형이다.


그 구조물은 “앉을 수 없는 의자”와

닿을 수 없는 구름”으로 이루어져,

기억, 사유, 그리고 사라진 이상에 대한

은유적 작품으로, 오성극장의

간판 프레임처럼, '지금은 없는 무언가'를

환기하고 있다.


오성극장의 간판 프레임은

지금은 사라진 극장 간판이

걸려 있던 자리,

도시의 퇴적된 기억을 증언하는

빈 틀이다.


'구름과 의자'와

'오성극장 간판 프레임',

둘 다 눈앞의 구체가 아닌,

사라진 것의 실루엣을 담는

구조란 의미가 닮은 꼴이다.


2.근대와 현대의 충돌지점에 서다


타피에스 재단 건물은 원래 출판사 건물이자

모더니즘 시대의 유산이다.

그 위에 현대 조형예술을 얹음으로써,

시간의 충돌을 드러내는 미학을 강조했다.


오성극장 또한 근대 산업도시

인천의 기억을 품고 있으며,

간판은 당시 대중문화와

활자미학의 흔적이고

지금은 시간에 의해 놓인 틀이지만,

여전히 도시정체성을 증명하는

자국으로 남아있다.


이는, 둘 다 시간의 이음매에 선

장소예술이며. 둘 다, 지나간 시대를

증언하는 장소 위에 현대적 감각이

포개져 있는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3.불완전한 것의 미학


타피에스의 조형은

완전한 형태가 아니다.

불균형, 조형의 파괴,

틀어진 아름다움이 핵심이며

이것이 그의 작품 세계를

철학적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오성극장의 간판 프레임도

간판은 사라졌고, 틀만 남았다.

무언가가 빠져 있어서,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말하자면 ‘결핍의 조형’이 된

'별 수 없이, 남겨진' 구조물이다.


둘 다 결핍을 통해 충만함을

이야기하는 구조이고,

없음’이 주는 상상력

여백의 가치를 담고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구름과 의자'를 본 순간 느꼈던

그 감동이 오성극장

간판 프레임 앞에

도착했다고 할까?


“기억의 구조물이자

사라진 시간을 새기는 예술.”

이라는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로.


이와 같이 작고 낡은

구조물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감각,

그것이야말로

도시의 미래를 엮는

주민의 특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쓸모없는 방치가 아닌,

도시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손길이 닿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미련이

가만히 또아리를 틀고 앉는다.


오성극장 간판.

그 위에는 분명히 꿈이,

우정이, 사랑이, 낭만이,

그리고 휴식이 걸려 있었으리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마치고

단체로 영화관을 찾았던

나의 중학 시절 같은 휴식의 장소.


또 어떤 이에게는,

주말이면 "거기서 보자"는

우정의 약속 장소.


어떤 추억에겐

첫사랑의 손을 꼭 쥐고

숨죽이며 스크린에 몰입했던

낭만의 장소.


또 누군가에게는 배우로,

감독으로, 편집가로, 작가 등등의

목표를 품게 된 꿈의 장소.


그래서 나는 도시의 과거를

찬란하게 복원하려는 눈빛이 모여

함께 기록하고,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 탐방의 실천이

더 잦아지기를 소망한다.


연고도, 추억도 없는

철 없는 이방인의

몽상이라 들릴지 모르지만,

극장이라는 이름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같은 향기,

같은 향수의 빛깔을 품고 있기에,

그래서 더 애틋하다.


시간의 퇴적물들이,

지역 주민의 감성과

심장의 따뜻한 박동으로

가꾸어지는 도시가 되기를.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는

시선들이 모여,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도시 풍경이 되기를.


도시에도 사색이 머물 자리,

장소성과 역사문화의 감촉을 품은

터와 이야기가 더 많이 피어나기를.


오성극장의 간판 프레임이

누군가의 가슴에도

찬란한 기억으로 박제된

선(線)이기를 소망하며.


#1957년부터_2025년7월까지

#양키시장을_이루고

#떠나게_되신_이름_모두,

#축복이_함께하시기를.

#수고_많으셨습니다.

안토니 타피에스 박물관과 '구름과 의자'작품.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