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0
새로 둥지를 튼 작업실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의
한 어촌마을이다.
며칠 전,
마을 이장님께 인사드리러
마을로 내려갔었다.
마을 풍경을 찍어
개인 블로그에 올려도 되는지,
또 조심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자랑할 이야기를 여쭙는 방문이었다.
처음 내려온 마을은
그동안 다녀보았던 여느 어촌답게
통통배와 바다새 소리가
바닷가 마을의 배경음악처럼
날아다니고 있었고,
선착장 근처에는 낯선 동작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노인이 그물을 손질하고 계셨는데
주변으로 시커먼 새 몇 마리가
큰 원을 그리며 어부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역시 낯설었다.
바닷가에서는 처음 본 크기의 새였다.
까마귀라 하기엔
크기와 나래짓이 너무 컸다.
그와 상관없이 그물에 집중하신
노어부의 허리가 펴질 때를 기다리며
나래짓의 동작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몰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까마귀가 저렇게 크다니!!"
"허허허허. 독수리요"
노어부의 작업을 중단시킨 뚱딴지였던지
웃으며 알려 주셨다.
"에?? 독수리요??"
"독수리 처음 보시오?"
"예! 정말 독수리예요?
바닷가에 독수리라뇨?"
"바닷가에 안 살아 봤으니 모르는 게지"
"이 마을에 독수리가 많이 살아요?"
" 우리 마을에는 수리가 안 오는데
우얀일로 수리가 다 왔을꼬?
저 건너 마을에 무리가 살고 있는데
갸들이 놀러 왔나?"
" 신기하다......... 독수리 처음 봐요^^
물고기 잡으러 왔나 봐요??"
역시 뚱딴지 소리였는지
대답대신 관광객이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정중이 허리를 굽혀 절 하고
작업실을 소개하며 이장님 댁을 여쭈었다.
인상도 좋으신 어르신,
참 자상하게도 가르쳐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독수리도 파리는 못 잡는다'는
말이 있지"
"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무리 날쌔고 큰 독수리도
못 하는 사냥이 있다는 거지.
각자의 몫이 있다는 뜻이고
제 할 일만 잘하라는 뜻 아니겠소"
제 할 일.....
여태 방점을 어디다 찍고 살았을까!
제 할 일만 잘하자!
엄살 고만 떨고 베 짜러 가야지.
핑계 고만 쌓고 베풀고 가야지.
사방천지가 스승이자 아군이다.
헤밍웨이 흉내를 내볼까 하고
제목을 '노인과 바다'로 쓰려다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 바닷가 마을에는
'노어부와 독수리'가 더 운치 있고
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빨간 등대와 까만 그물에 담긴
강강한 노어부의 붉은 심장과
까만 독수리 날개가 펄럭이는
생의 의지 덕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