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4
종이만큼
어떤 삶을
잘 외우는 벗이
또 있을까...
싶다.
그리고 또,
잘 잊어버리기도 하지.
......
종이는 삶을 기억하는
가장 얇은 몸이다.
슬픔이 스치면 울고,
기쁨이 닿으면 빛난다.
같이 울어 주고
함께 빛날 줄 아는 벗.
그래서 한 올 섬유로 길을 내고
또 다른 올이 겹겹이 의지하며
한 생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종이는
기억만을 붙잡지 않는다.
스스로 낡아가며,
시간을 흘려보낼 줄 아는 존재,
지혜의 수장고이다.
담아두고
잊어내고
다시 남기는 일.
시간과 함께
소멸할 줄 아는 순응.
삶도 그렇다.
선명한 기억도,
희미한 흔적도
결국 한 장의 종이 위에
겹겹이 눌러 적힌 우리다.
오늘,
한 삶이 잘 엮여
한 생이 조용히 잊히는 자리.
그 여백을
종이는 오래 바라보고 있다.
책 표지로 엮어보겠다고
한 조각 짰다가,
그냥 벽에 걸어 두기로.
"종이, 삶을 외우다"
/weaving /종이, 사이잘, 마사
/가변설치 /김수경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