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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Apr 03. 2019

누군가에게서 닮은 습관

너의 음악, 너의 영화. 그게 전부 이젠 내가 살아가는 것들.

요즘 자주 나의 자만에 대해 반성한다.


내가 가진 많은 것들 중에 온전한 나로 이루어진 것이 있을까. 

누군가에게서 닮은 습관.  누군가에게서 닮은 말투. 그에게서 배운 취향과 시선. 즐겨입던 옷이나 색깔, 취미들. 걸음걸이나 행동. 신념이나 삶의 태도. 너의 음악, 너의 영화. 좋아하는 시간, 좋아하는 음식. 그런 것들. 그게 전부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것들.



지금의 나를 이루는 삶의 방식 대부분의 것들은 모두 조금 조금씩 나를 스쳐간 사람들에게서 얻어온 것들. 그래서 어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온전한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나'를 거쳐간 많은 이들의 흔적을 모아두고 기록하는 형태로서 인간인 '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삶은 이런 식의 '빌려옴' 들 속에서 지속되는 시간이라고.



이강백의 <결혼>에서 시간과 소유에 대해 그러한 묘사를 하는데, 그게 한 사람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대입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신념이나 가치관이라는 것도 결국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만들어지니까. 지금의 나는 결국 과거의 너로부터, 현재의, 그리고 또 앞으로 만날 미래의 너로부터 빌려오고 얻어온 것들을 가진 사람. 그러니까 이것이 전부 나의 특별함이라 자만해서는 안되는 것들인데.



오늘의 많은 대화들 속에 친구의 전체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생각했다. 세상은 전부 이어져 있고, 결국은 돌고 돌아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거라고. 누가 말했더라. 어쨌거나 나는 꽤 운명론자에 가까워서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야 하는 거라면 그렇게 되겠지.'


그것이 단연 허무맹랑한 '운명' 같은게 아니더라도, 어떤 기운 같은 것들이 분명 우리를 둘러싸고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게 미립자의 움직임일까? 아무튼 나는 그 문장을 꽤 깊이 믿는다. 그게 무엇이든 분명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눈빛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마음먹음에 그런 알 수 없는 유기적인 에너지와 기운들이 분명하게 작용하고 있는거라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그러므로 나를 이루는 많은 것들이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나, 내가 또 누군가의 삶에 어떤 변화나 영향을 주는 것.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배우고 실수하는 것. 생각이 바뀌고 신념이 바뀌는 것. 삶의 태도가 변화하는 것. 더 나아지건 나빠지건. 어두워지건 밝아지건 그 모든 것들은 그래야 했기에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그저 그렇게 새로이 적혀진 것들과 빌려온 것들에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붙여둔다. 필요하다면 누군가 돌려받으러 올 일도 있을테고, 잊혀진 어떤 것은 내가 다른 이에게 또 다시 전해줄 수도 있을테다. 그러므로 '이루어진 나'가 아닌, 그 하나 하나의 마음과 순간과 감정들을 기억할 것. 자만하지 말고 착각하지 말 것. 고마움과 사랑을 아끼지 않고 전할 것. 내게 머무른 많은 이들이 빌려준 소중한 마음들을 잘 담아둘 것.


언젠가 찾으러 온다면 당신 덕에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게.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신날 수 있게. 미움도 사랑도 당신이 내게 빌려준 많은 것들은 전부 내게 가치있는 것들이었어요. 하고. 그 이름 붙인 것들을 자주 돌아보며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00918. 23:00.

또 다시 아침이면 사라질, 어떤 생각들.

9월에는 정말로 편지를 적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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