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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Apr 03. 2019

나는 그저 적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적는다.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어느 작가분의 인터뷰에서 이런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전공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많은 그림을 그리세요?"



저는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려요.


그 한 줄을 읽고 아, 내겐 글이 그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글을 아주 잘 쓴다 여겨본 적도, 자신에 차 떵떵거린 적도 없다. 남들보다 조금 운이 좋아 책 두어 권을 문장으로 엮어낼 수 있었을 뿐, 그것을 어떤 특별한 훈장처럼 여긴 적도, 직업이나 예술인으로서 글에 깊이가 있는 '진짜 작가'라 여긴 적도 없다.

(그리고 사실 내 책 중엔 재미로 즐거이 만든 것들이 태반이라 메모장 깊이 적힌 감정적인 문장들을 담은 적이 거의 없다.)

(어쩌면 나처럼 좋은 문장을 배우고, 공부하고, 담아내기 위해 굳이 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인기를 얻는 좋은 작가라면 그건 그거대로 슬픈 일이지 싶다.)


나는 그저 적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적는다. 글을 적을 때 나는 안정되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가득 쏟아내고 나면 한결 나아지니까. (그리고 꽤 재미있다. 뭐든 재밌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지속할 리가 없지만서도..)


그러니 내게 있어서 인쇄와 출판이란, 일종의 '장례'에 가까웠던 셈이다. 휘몰아치며 적어내린 감정들을 아주 오랜 뒤, 비로소 정리하는 과정. 침착하게 꺼내어 펼쳐보고 가만 접어 모아 떠나보내는 그런 이별의 과정이었던 셈. (그 이별이란 것이 항상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예술가는 일생을 완벽함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 같다. 그게 뭐든 자신만의 언어로.


그 말이 맞다. 성공한 위대한 예술가는 죄다 일상에서, 혹은 다른 성격적인 부분에서 중대한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가정에서 외면받거나.


아니, 내가 미칠 정도로 몰두한 적은 있던가.


화가 가득한데 글을 쓸 때만큼은 괜찮아져요.


두시간 동안 아주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글은 내가 나를 정리하는 유일한 형태였는데, 작가의 목소리가 내러티브를 압도해버리면 그건 자아 표현이 될 뿐이지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없는 거라던 대사가 계속 맴돈다. 비슷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지만 이번만큼 와 닿았던 적이 없었다.


더 할 말이 있었는데 적는 동안 잊어버렸다. 이야기란 그렇지. 사실과 허구가 섞여있는, 그게 글쓰기야.


그래서 모든 글은 내가 되고, 또 네가 된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보들레르의 문장.


주변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두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 어떤 부분이 참 좋아서, 여지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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