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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Apr 03. 2019

나에게도, 인생의 주문같은 말들이 몇 가지 있다.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이혼세일.

2018. 11. 16. 16:36.

창비 사전서평단.



너는 그저 네가 보고 싶은대로 나를 보는 거야.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주인공 프레디가, 자신을 사랑한다 붙잡는 폴에게 말하는 대사였다. 영화가 끝나고 그 문장에 대해 아주 오래 생각했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잘 안다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와 친한 친구들, 좋아하는 사람들. 어쩌면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전부를, 내가 보고싶은 대로만 알아가려 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랬으면서 오만하게도 ‘나는 너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확신했는지 모르겠다고. 프레디 역시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메리 뿐이라고 외쳤지만, 실은 그도 그가 보고 싶은대로 그녀를 보아 온 것일지 모른다. 사실 그렇지.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다른 누군가에게 그게 가능할 리가.

 <이혼세일>에 등장하는 다섯 친구도 그렇다. 이재, 경윤, 지원, 성린, 아영.
 이야기는 이혼을 앞둔 이재가 자신의 집안 살림들을 처분하는 이혼세일에 친구들을 초대하며 시작되지만, 40페이지 가까이 되는 텍스트 속에서 그녀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문장은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나머지 네 친구의 시선 속에서 이재는, 단어를 고르는 감각이 가끔 색다르고, 음식 솜씨가 흉내낼 수 없게 대단한 친구. 학창시절엔 묘한 분위기와 감미로운 공기를 끌고 다녀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했던 친구. 같은 그룹에서도 제일 친하고 싶고, 다른 이들과 더 친해 보일 때면 질투가 나기도 하는, 그런 어떤 동경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경윤은 이재의 이혼소식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결혼은 장아찌와 고추장찌개로는 유지시킬 수 없는 아주 복잡한 합의의 상태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것과 별개로…….


이재에겐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흉내 낼 수 없이 탁월한 부분이 있는데, 대체 그런 사람을 놓치고 모든 걸 망쳐버리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내 친구라서 너무 후하게 생각하는 걸까?”
남편은 말없이 장아찌 병에 남은 양을 가늠하고 있었다.


나는 눈으로 글자들을 좇아가며 자주 경윤이 되었다가, 지원이 되었다가, 성린이나 아영이었다가, 이재가 됐다.
나도 누군가에겐 이재처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겐 지원처럼 주문같은 말을 선물받는 사람이었으며, 누군가에겐 너라면 잘 해낼거라는 끝없는 응원과 믿음을 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때론 나랑 더 친했으면 좋겠어서 괜히 혼자 속으로 질투하고 속상해하기도 했고, 내 일처럼 걱정하고 염려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내가 ‘나의 시선’으로 상대를 이해할 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종종 이해할 수 없어 속상했고, 속마음이나 대답을 들을 수 없어 서운하기도 했다. 아프고 미울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너’는, 내가 바라보는 ‘너의 모습’이 아니었으므로.

네명의 친구들에게도 이재의 이혼이 비슷했을지 모르겠다. 그동안 그들이 보고싶은 모습대로만 이재를 바라봐왔기에 그녀의 이혼도, 갑작스런 ‘이혼세일’이라는 엉뚱한 상황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모두가 동경하는 이재는 반대로 친구들을 부러워 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아이가 있고, 가정이 있고, 커리어가 있는 친구들. 허공에 조금 떠 있는 듯한 자신과는 달리 안정적인 친구들을, 그런 삶과 안정을 내내 갈망했는지 모르겠다고. 누구도 그런 마음은 알아채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들을 때는 별 도움 안되는 소리를 한다 싶었지만, 그후 지원은 이상하게 이재의 말을 자주 떠올렸다. 고정되지 않았어, 고정되지 않았어, 하고 주문처럼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지원은 어떻게든 이재의 이혼세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서 무언가 근사한 말을 돌려줘야 했다. 주문 같은 말을.


네 친구가 그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이재를 바라보았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부분도 틀림없이 이재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이재의 어떤 부분을, 이재를, 그 순간 그들이 바라본, 이재가 보여주는 이재 그대로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복잡하고, 인간은 매순간 변하고 완성되어가니까. 어쩌면 네가 보는 대로 보았던 내 모습이, 그 순간의 진짜 나였던거라고. 아끼고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 어쨌든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재가 다시 따뜻하게 안길 품이 그들이라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니까. 그들이 이재의 어떤 모습을 보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때로 인생은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아도 관계에서 느끼는 많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누군가는 조금 이르게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말을 전해주기도 하고, 전해받기도 한다. 정작 나는 기억도 못하는 문장을 누군가는 오래도록 간직하기도 하고, 아주 많이 지난 어떤 순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기도 한다.



지원이 가진 것처럼, 나도 주문 같은 말들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그런 마법같은 순간과 문장들 두어가지 쯤은 존재하기 마련이지. 그 글자들의 힘을 알기에 좀 더 좋은 말들, 조심스럽고 따뜻한 말들을 닿을 수 있는 한 소중히 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고 싶은대로 보는 것일 뿐이라도, 그 순간 내가 발견한 누군가의 좋은 부분과 멋진 부분들, 더 보고싶고 알아가고 싶은 부분들, 어쩌면 그 스스로도 잘 모를 그의 어떤 부분들을 사는 동안 더 많이 말해주고, 안아주고, 소중히 아껴주고 응원해주어야겠다고.

내가 발견한 너의 어떤 부분들을 사랑해. 너를 온전히 안다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너의 작은 조각이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우니 틀림없이 다른 부분도 내겐 놀랍고 새롭고 사랑스러울거야.

그러니 언제든 안심하고 너의 많은 부분들을 내게 보여줘. 함께 알고 겪고 쌓아나가자. 내 인생에 남겨질 다정한 사람 중에 네가 있어서, 나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그렇게 곁의 사람들에게 자주 이야기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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