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삶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by 라벤더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월든 중에서)


내 인생의 여백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주었던 책이 있다. 관습과 제도 속에서 나는 과연 여백을 주는 삶을 살았던가. 내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물으며 실천하며 살아왔는가.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책들을 찾았고, 누군가는 자연에 그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새벽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물안개 속으로 태양의 손길이 마치자 죽어 가는 별 표면에 피어오르는 눈의 망령처럼 안개가 하얗게 빛났다. 강 위에 드리운 빛에 줄지어 선 배들과 울창한 숲을 이룬 돛대들이 희미하나마 구분되었지만 앞쪽으로 사람의 시선을 허락지 않는 반짝거리는 장막이 쳐져 있었다. 갑자기 그 하얀 구름 속에서 높고 견고하며 당당한 성채가 솟아올았다. 그것은 태양이 발견의 대가다운 마법의 지팡이가 한번 까딱하는 순간에 별안간 허공에서 등장한 것 같았다. 강을 굽어보며 우뚝 선 요새. 잔인하고 야만적인 종족의 본거지. 하지만 그것을 세운 마법사가 다시 한번 재빨리 손을 쓰자 형형색핵의 장막이 성채의 꼭대기에 걸쳐졌다. 그때, 노란 햇빛이 안개를 뚫고 여기저기 광대한 손길을 뻗쳤고, 초록색과 노란색 지붕들의 군락이 보였다. 그것은 거대했지만 어떤 유형이나 질서가 없었다. 질서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헤아릴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종잡을 수 없고 방대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풍부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요새도 아니요, 사원도 아닌 인간의 출입을 허용치 않는 신들의 황제가 세운 마법의 궁전이었다. 인간의 손으로 지여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며 비물적이었다. 마치 꿈결처럼.

눈물이 키티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 보기는 처음이었고 마치 몸을 허물처럼 발치에 벗어던지고 순수한 영혼이 된 것만 같았다. 아름다움이 다가왔다. (인생의 베일 중에서)



서머싯 몸의 "인생에 베일"에서 키티가 대자연의 숭고함으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깨닫는 부분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치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봤다. 자연에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우리는 대자연의 거대함과 기이함을 깨닫지 못한다. 잠에서 깨어나든 몽상에서 깨어나든, 사람은 그때마다 나침반의 위치를 다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258쪽)


"월든"을 쓴 소로우도 키티처럼 자연 앞에 숙연했다. 이 책은 1845년 2년여 동안 홀로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얻게 된 소로우의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의 결과이다. 월든호수, 햇빛과 바람, 새와 동물들, 그리고 키우는 콩과 잡초조차도 동물들과 공유하는 삶. 필요한 만큼의 땅에서 필요한 만큼의 농작물만 직접 가꿔 먹는 것. 적은 노동과 원하는 형태의 삶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는 자발적 빈곤.


수레를 말 앞에 매는 식의 본말전도는 아름답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집을 아름다운 물건들로 장식하기 전에 우선 벽을 깨끗하게 치워야겠다. 우리의 생활도 깨끗하게 치우고 아름다운 살림살이와 생활을 그 밑바탕에 깔아야 하겠다. (65쪽)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다. 2010년 이 책을 접하고 너무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씩 물건들을 줄여나갔고, 빈 공간 속에서 여유로움을 느꼈다. 냉장고 파먹기도 유행인데, 조금씩 마트출입을 줄이고 냉장고 속을 비워나가며 적당히 먹고사는 것이 주는 행복감을 알게 됐다. 삶에서 덜어내고 비워내는 것,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 아닐까.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143쪽) 열심히 사는 삶. 쉼이나 여백 없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에게 많은 시간을 주며 살아가지만, 그런데 진정 중요한 것이 맞을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가 저당 잡힌 삶이라면 분명 성찰이 필요하다.


사회가 학생들의 값비싼 놀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인생을 '놀듯이 보내거나' 또는 인생을 '공부만 하지'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보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 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82~83쪽) 교육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문장. 옳은 길이 아니었다면 다시 가면 된다. 공교육도, 대학도 칼을 벼리듯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은 인생을 가치 있게 살지도 못하면서 경험에 의해서, 바꾸어 말하면 실패에 의해서 자기들의 아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147쪽)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겨를도 없이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공부와 경쟁이 강요되는 사회.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에게 "도끼"가 되었던 문장이다.


당신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 몇 마디나마 고전 어휘들을 공부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고전이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신탁이며, 그 안에는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 대하여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의 신탁이나 도도나에 있는 제우스 신의 신탁도 밝히지 못한 해답들이 들어있다. 고전 연구를 그만두는 것은 자연이 낡았다고 해서 자연 연구를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다.(154쪽) 독서에 대한 소로우의 성찰이 돋보인다. 초판이 1993년에 나왔는데, 대학시절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삶이 달라졌을까? 너무나 아쉽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다르게 보려고 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


자연은(해와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과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 준다.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한다면 온 자연이 함께 슬퍼해줄 것이다. 태양은 그 밝음을 감출 것이며 바람은 인간처럼 탄식할 것이며 구름은 눈물의 비를 흘릴 것이며 숲은 한여름에도 잎을 떨어뜨리고 상복을 입을 것이다. (209쪽)


그의 자연에 대한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는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자연 속에서 사색과 성찰의 삶을 몸소 보여주었던 소로우의 "월든"은 내 인생의 책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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