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삶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by 라벤더

"퉁퉁퉁퉁퉁!!!"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거실. 소리의 진원지는 현관이었다. 잠에서 깬 나는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고함소리. 이웃집 아줌마와 경비아저씨였다. "도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연기가 자욱한 거예요?" 상기된 얼굴로 호통을 치는 가운데 나는 어쩔 줄 모르며 서있었다. "사골국을 올려놓은 채 그만 잠이 들어 버렸어요. 죄송합니다." 사골국이라도 고아서 먹으면 조금 힘이 날까 해서 벌였던 일이 이지경이 되어버렸다. 소리를 지르던 그들은 내 남산만 한 배를 보더니 상황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불이 난 줄 알고 식겁했어요. 새댁 몸조심해요. 쯧쯧. " 놀람과 안도, 자괴감으로 긴장이 풀린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이를 낳기 3일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잘 그리지 못하는 그림이라도 부여잡고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작가가 몸에 돌아다니는 말들을 꺼내놓기 위해 글을 쓴 것처럼 나 또한 내면의 뭔가를 꺼내놓고 싶었나 보다.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허기가 더 중요한 시절이었다.


사는 일이 힘에 부치고 싱숭생숭 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글을 썼다. 오직 노릇과 역할로 한 사람을 정의하고 성과와 목표로 한 생애를 평가하는 가부장제 언어로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몸에 돌아다니는 말들을 어디다 꺼내놓고 싶었다. 꺼내놓고 싶은 만큼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고유한 슬픔일지라도 언어화하는 순간 구차한 슬픔으로 일반화되는 게 싫었다. 우리가 입을 다무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던가. 말하고 싶음과 말할 수 없음, 말의 욕망과 말의 장애가 충돌하던 어느 봄날, 나는 이미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17쪽)


백지장처럼 새하얀 몸과 투명한 풍선이 되어버린 표지는 강렬하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말은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투쟁, 그 쓰라림의 고통을 통과해야 이해에 가닿을 수 있다는 말로 읽힌다. 미지의 섬을 보려는 눈과 조금씩 곁을 내어주는 일. 이기적이고 자기본위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닐까.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모든 김지영에 대한 이야기다. 시스템 안에서 소멸되어 가던 김지영이 결국 말을 잃고 타인의 목소리로 항변하던 모습은 참 아프다. 은유작가는 고통을 글로 승화시켰지만,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건 참 씁쓸하다. 여자가 밥을 차리는 삶은 엄마에게서 내게로 이어졌다. 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밥이 없는 삶.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명제가 가끔은 고귀하게 가끔은 버겁게 느껴진다.


최승자 시인의 시구대로 우리는 "채워져야 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이고, 누군가 차리지 않은 그냥 밥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엄마들은 어디 효도관광이라도 가서야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 끼니 밥이 나오는 신비를 경험한다. 그제야 맛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104쪽)


맞벌이를 하며 참 많이도 싸웠다. 낯선 집안일은 일찍 퇴근하는 내가 더 해야 했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거의 내 차지가 되었다. 답답한 사람이 먼저 하게 되어 있다. 힘들면 힘든 대로 덜하면 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함께 일을 하며 왜 집안일과 육아를 등한시할까, 왜 도와준다고 생각할까라는 의문만이 쌓여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었겠지만 일, 가사, 육아의 삼중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정서와 관습은 야속하기만 하다. 남들도 그러니까라는 말은 시스템의 폭력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옆 사람 힘든 게 왜 안보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 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무심함이 무뚝뚝함, 남자다움으로 미화된 데다가 학교나 학원에서 안 가르쳐주니까 관 뚜껑 닫힐 때까지 모른다. 모르니까 편하게 살다가 죽는 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는 여자들도 많다.(90쪽)


많은 부침 끝에 남편은 설거지를 거뜬히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밥, 빨래와 청소도 잘한다. 주말은 오롯이 남편이 감당한다. 늦잠 자고 싶은 휴일 아침,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던 나는 이제 남편이 챙겨주는 부실한 밥도 감사히 먹는다. 밥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나에겐 큰 변화다. 샌드위치를 해주겠다며 야심 차게 준비한 책이 언제 실력발휘에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믿기로 했다.


아들 둘은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해왔다. 존립적 인간으로서 가사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으면 좋겠다. 습관이라면 결심하지 않고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미룸의 신공을 발휘하지만 아이들은 설거지와 청소를 잘한다. 성인이 되기 전에 스스로의 삶을 감당하고 책임질 줄 아는 어른으로 키워내고 싶다.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말 없는 그것들이 품은 살 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그저 연연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지기를 희망한다. 그리 사는 영혼이 문득 가여운 거다. (238쪽)


아이들을 낳고 키운 십여 년 동안 내 삶이 있었나 싶다. 생각해 보면 가장 힘들었을 때 책에 몰입했던 것 같다. 책으로 도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는 충만함이 있었다. 앞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서른다섯부터 마흔다섯으로 이어지는 한 여자의 투쟁의 기록,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는 엄마와 자아의 양립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기록이다.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질문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고 존재가 존재를 닦달하지 않는 세상(24쪽)'은 끝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지는 모든 존재들의 '탈고유화'의 여정(25쪽)'에 힘이 되어줄 생각과 말과 글들. 작가의 솔직한 글은 시처럼 산문처럼 간결하고 아름답다. "은유"라는 필명처럼.


+더하기

9년 전의 글이다. 퇴직한 남편은 설거지를 무서워하지 않는 남자가 되었고, 꽁치김치찌개와 햇반으로 밥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26,25살 아들들은 장 봐서 밥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상이 어렵지 않은 아이들이 되었다.


근데 이젠 측은지심인지 싸울 힘이 없다


@cozy_reading_with_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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