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과 주체성 회복의 길은

「소송, 카프카」

by 라벤더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법에 의하면 이와 같이 하면 되는데, 고쳐서 더 무거운 벌로 다스린다면 백성이 법을 믿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정위는 천하의 법을 공정하게 다스리는 자인데 한쪽으로 기울면 천하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다 제각기 법을 무겁게도 하고 가볍게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그들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사기열전 158쪽, 사마천)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조문을 무색하게 만든 의혹투성이인 판사의 재판들, 사법농단이다.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대의기관인 국회의 야당은 내란 세력을 비호하고, 국민의 삶을 돌볼 민생법안은 반대부터 한다. 내란이 성공했다면 대통령도 여당대표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대표발언에 그랬어야 했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본인의 안위를 위한 정치만 해서 되겠는가


사익을 위해 나라를 거덜 낸 전 대통령은 자의식 과잉인지, 27년 검사한 사람이라며 수의를 벗고, 의자에 버티며 체포저지행동을 하고 있다. 헌법을 지키겠다는 검사로 대통령으로 했던 선서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선출한 적 없는 영부인은 실제 대통령 업무를 보며 매관매직으로 공동체를 어지럽혔다. 특검에 이어 특판까지 해야 하는 지경이라니, 이쯤 되면 이게 나란가 싶다.


돈 있고 빽 있는 자들은 치외법권 어디쯤 살고 있나 보다. 사회정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마저 부패했다니 준법을 당연시했던 국민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법을 평범한 국민만 지겨야한다면 공허한 울림이 아닌가.


플라톤은 "국가"에서 소수 엘리트의 철인정치를 주장한다. 전쟁의 패배로 인한 혼란한 정세 속에서 30인의 과두정이 세워지고 아테네 시민들의 참정권은 박탈당한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했던 그리스의 중우정치에 회의를 느낀 플라톤은 진리와 선을 아는 소수의 철인,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란 강자의 이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일갈한 트라시마코스, 반면 절제실천과 사익배제의 정치 이상향을 제시한 플라톤의 주장은 현재에도 의미가 있다.


적으로 무언가를 바꿔버리면, 그것은 자기 발아래에 있는 지반을 없애는 행위와 같아서 자신만 추락하게 될 뿐이고, 그 거대한 조직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소한 장애는 다른 곳에서 손쉽게 보완하여 이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조직은 전보다 더 단호하고, 더 주의 깊고, 더 엄격하고, 더 악의적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니 일을 방해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비난을 가하는 것은, 특히 비난의 이유를 전체적인 의미에서 이해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별 소용이 없다.
(148~149쪽)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된 요제프 K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송에 휘말린다. 낯선 이들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일 년 간의 지난한 소송과정을 겪으면서도 소송을 제기한 사람도 죄목도 알아내지 못한다.


궤도를 이탈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리라는 불안 속에서도 맡겨진 은행업무에 성실했듯, 주변의 인물들을 이용하고 상황을 주도하며 주체적으로 소송을 풀어가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조직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K. 충분히 잘 살아왔다고 믿었던 그는 견고한 관료체제 앞에서 힘을 잃어 간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부패한 관리들,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는 판사과 변호사, 소송의 이유나 원인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윗선으로 책임을 돌리는 인물들. 무죄를 밝히려면 오히려 범법을 저지르게 되는 부조리들. 법원이라는 견고하고 거대한 권력에 맞선 그는 소외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켜야 할 법에 감히 이유를 물었던 죄, '거대한 조직 안에 서 취약한 손잡이(314쪽)'를 찾아 조직을 흔들려한 죄, 포기하기 않고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낸 죄. K는 결국 상급 판사를 만나지 못하고 무한한 위계질서를 어지럽힌 자로 매도된다. 당연시했던 관습과 법, 종교, 신념에 다른 목소리를 냈던 그는 추락하고 만다.


권력의 궁극적 목표는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처럼 전 국민을 이러한 규율에 자동적으로 익숙하도록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 규율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개체화되어 가고 거대한 메커니즘의 부속품처럼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규율은 인간의 육체를 통제하면서 동시에 개별자로 만든다.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규율은 개인을 권력행사의 목적이자 수단으로 삼는 권력의 특수한 기술이다." 푸코의 이 말은 규율, 개인, 권력의 상관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말이다. (감시와 처벌 12쪽, 미셸 푸코)


규율엄수와 징계, 감독과 제재의 형태. 권력은 이러한 방법으로 가시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횡포와 전제성을 은폐하면서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권력은 자기 모습을 내보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보게 되는 일망감시장치의 구조를 통해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잔인하게 처벌하는 방법보다 감시하는 방법에 의존한 권력의 전략으로 인간이 육체는 규율에 길들여진 것이다. (감시와 처벌 13쪽. 미셸 푸코)


K는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판옵티콘의 감시체제로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 안에 있다. 정의의 여신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울이 흔들리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가 없지요.(179쪽) 포기와 순응을 권유하고, 권력에 비굴해지기를 종용하며, 대물림된 특권으로 지위를 견고하게 만드는 인물들. 모든 것은 법원에 속해 있습니다.(185쪽) 죄 없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이 이 사법제도의 본질이겠지요.(70쪽) 결국 법원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심각한 죄를 끌어낼 거라고 말하는 화가 티토렐리와 법원의 판결이 어떻든 그저 받아들이라는 레니의 조언은 권력 앞에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준다.


일제에 대한 절반의 독립은 친일파에게 기회가 되었고, 반공의 가면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친일의 맥을 이은 군부독재는 경제성장의 탈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한다. 공작정치로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며 정권유지의 희생양을 만든다. 입맛에 맞는 언론을 남기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국민을 감시하고 탄압하며, 불리한 여론은 사건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경제를 위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은 언제든지 독재 권력의 소생을 부추길 수 있다.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권력과 국가의 정당성을 강조한 홉스의 주장처럼 법은 정의 실현의 수단이 아니라 복종과 질서유지의 수단일 뿐인가. 신부가 말했다.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을 다만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울한 의견이로군요." K가 말했다.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되어 있으니까요."(277쪽) 광기의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현대 관료체제(334쪽, 역자 해설)와 종교, 법의 권위에 소외된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고 섬뜩하다. 비단 그것은 책 속 인물인 요제프 K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체적 자유를 박탈당한 이 비극적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엄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주체로서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까?( 감시와 처벌 14쪽, 미셸 푸코, 역자서문)


#2018년 6월 4일 원글 작성 #2025년 9월 12일 퇴고 # 소송_카프카_문학동네 #사기열전_사마천 #1984_조지오웰 #감시와 처벌_미셸 푸코 #서평 #나라다운 나라가 되어가는 중 #국민이 구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확국이다 #브런치작가 #북샵라벤더 책방지기 #경주그림책서점 #경주독립서점 #bookshoplavender #경주읍성 동네책방 #책사진 출처-예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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