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도 썩 괜찮았어,라고 말하기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by 라벤더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사노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중에서)


그녀의 우울하지만 통쾌한 시선들이 감칠맛이 난다. 열한 살에 죽은 남동생과 개미를 두고 오줌발시합을 벌이던 장면이나 졸졸졸 흐르는 자신의 오줌량을 재어보고 싶다는 장면에선 마냥 실실 웃었지만, 추억을 떠올리며 죽은 이를 그리워

하고 온몸으로 나이 듦을 느껴가는 모습에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녀의 글 속에는 유독 먹고사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먹는 요리들. 몇 가지는 따라 해보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매일 밥 지어먹고 자고 깨고 그냥 살아간다. 리버페이스 트(아마도 수프)의 단맛을 위해 양파를 장시간 끓여 졸아든 양파(양파 여덟 개를 5분 만에^^)를 날름 먹어버리기도 하고, 닭뼈를 사러 갔다가 수요일 아침에 오라는 말에 집에 갈 때까지 "수요일, 아침, 수요일, 아침"하고 되뇌며 돌아가는 65세의 할머니라니.^^ 아이들 어릴 적에 읽어주었던 동화책이 생각난다. 양파심부름에 아이가 "양파, 양파"하며 가게까지 되뇌며 가는 장면이.


시간이 흐르고 보니 엽란 사건은 잊히지 않는 풍경과 추억으로 남았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을 추억하다 보면 마음이 아릴 정도로 슬퍼진다. 그 당시에는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기만 했는데, 노노코, 너희 집 애들은 식빵을 각자 한 줄씩 먹어치웠지.


치매에 걸려서 요즘의 기억보다는 과거의 기억이 또렷해진다. 찬합 칸막이로 알루미늄포일대신 엽란이 필요하다는 친구의 말에, 목숨을 걸고 눈 내리는 산길을 달려 엽란을 구하러 간다. 그 경험은 평생 엽란과 함께했던 그날의 추억을 선물한다. 그녀의 책을 보며 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렸다. 치매로 과거의 기억은

또렷해지고 현재는 점점 잃어가 실수연발이지만, 점점 나쁜 할머니가 되어간다고 투덜거리지만, 몸과 마음이 남루하다고 자처하는 할머니지만,

그녀는 충분히 사랑스럽다.


나는 일본 아줌마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선전에 휘둘린 것도 아니고 잘난 평론가들의 꼬임에 넘어간 것도 아니다. 아줌마들은 스스로 한국 드라마를 발견했고, 땅속 마그마처럼 쓰나미처럼 우르르 몰려들어 한류를 띄웠다. 그러고는 창피고 체면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흠뻑 빠져서 일본을 바꾸어놓았다. 외교관도 훌륭한 학자도 예술가도 못한 일을 아줌마들이 해냈다. 나도 그 물결에 뒤늦게 올라타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져서 한국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보다 턱도 돌아간다. 좋은 일은 맘껏 좋아하고, 슬픈 일엔 맘껏 울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버럭 호통치고 잊어버린다. 너무 통쾌하다. 인생 뭐 있어? 심각하게 살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눈을 떴는데 몇 시인지 모르겠다. 또 침대에서 발로 커튼을 열어 졎혔다. 시험 삼아 해 보았더니 아직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병석에 드러눕기라도 하면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는 지금의 건강을 얼마나 눈물겹게 그리워하게 될까?


그녀는 치매와 암선고를 받고 2년여의 삶을 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나도 과연 그녀처럼 죽음의 시간을 담담하게 기다릴 수 있을까? 죽음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도 "전혀, 언젠가는 죽는걸.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라며 당당하게 말한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나 자신이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까운 친구는 절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죽음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 에게 찾아 돌 때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죽음보다는 가까운 친구의 죽음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나도 모르게,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순이 되었다.

인생은 도중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눈앞의 욕망에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먼 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람은 태평스러운 존재다. 그간 실수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는 나조차도 '내 인생은 썩 괜찮았어'라고 생각한다.


"썩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

아, 멋지다.

만화처럼 단숨에 읽히는 책이지만 그녀의 삶에 대한 시선은 녹록지 않다. 살면서 여러 경험과 감정들로 주춤거리게 될 때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그녀의 또 다른 책, "죽는 게 뭐라고"도 읽어보고 싶다.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고 나니, 사노 요코 할머니처럼, 인생 뭐 있어, 좋아하는 거 하면서 편하게 살자가 되더라. 2년 전 명퇴하고 냥이들을 가족으로 만나고, 집을 짓고, 책방을 냈다. 가끔 외부강의를 나가고,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이러니하게도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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