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장 그르니에」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문득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은 꿈을 꾸듯 몽롱하게 읽힌다. 상징적 은유로 가득한 몽환적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분리되어 "공(空)의 세계"로 진입한 듯하다. 내가 존재하지만 내가 없어지는 경험. 선잠이 들어 자다 깨다를 반복할 때 느껴지는 몽롱함.
노자의 도덕경에 "도는 그릇처럼 비어, 그 쓰임에 차고 넘치는 일이 없다. 심연처럼 깊어, 온갖 것의 근원이 된다"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도" 말이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의 "섬에 부쳐서"중)
이보다 더 멋진 추천사가 있을까. 카뮈는 스승의 글에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심지어 이십 년 동안 이 책을 읽어왔고 자신의 내부에 살아있는 글이라고 말한다.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 어둠, 혹은 무,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섬"의 번역가 김화영의 "글의 침묵" 중)
번역가의 말처럼 이 산문집은 고요한 시간에 몽상에 잠기며 천천히 읽고 싶은 아름다운 글이다.
비워냄으로 정신적 고요에 이르는 「공의 매혹」
고양이를 통해 "인간다움"에 매몰된 불완전한 실존을 깨닫는 「고양이 물루」
부조리하고 황폐한 삶 속에서 "비밀"의 매혹을 찾아가는 「케르겔렌 군도」
도피가 아닌 자기 인식의 여행을 통해 무한한 공허를 만들어가는 「행운의 섬들」
책을 통한 "정신의 부활"을 경험하는 「부활의 섬」
세계로부터의 소외의 방법으로 인간에게서 신성을 이끌어내도록 만드는 「상상의 인도」
현재에 뿌리내림으로 얻게 되는 행복을 그린 「사라져 버린 날들」과 「보로메의 섬들」.
그르니에의 사유의 흐름을 따라 성찰의 시간을 갖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나만의 "사유의 섬"들을 탐험하게 된다. "고독"의 침묵이기보다 "비밀"의 침묵이 행복임을 말해주는 이 산문집은 20년을 곁에 두고 읽었다는 카뮈처럼,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충만으로 가득 찬 "공의 세계"로 이끌어 줄 문장이 가득하다.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었던 저자의 말처럼 짧은 글 속에 긴 여운을 담고 있다.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오메 섬들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가냘프게 그리도 인간적으로 보호해 주는 마른 돌담 하나만으로도 나를 격리시켜 주기에 족할 것이고 어느 농가의 문턱에 선 두 그루의 시프레 나무만으로도 나를 반겨 맞아주기에 족할 것이니....... 한 번의 악수, 어떤 총명의 표시, 어떤 눈길....... 이런 것들이 바로-이토록 가까운, 이토록 잔혹하게 가까운-나의 보오메 섬들일 터이다.
#2016년 5월 5일 23시 9분 글작성 #고양이 물루를 보면서 생각만 해도 귀여운 냥이들을 미래에 만날 운명? #춘배, 코코, 모네, 모찌는 아빠 엄마랑 만날 인연이었네:)#섬_장 그르니에_민음사
#까뮈의 추천사 #책표지가 예쁘게 바뀌었다 #북샵라벤더 #경주그림책서점 #경주독립서점 #bookshoplavender #경주읍성 동네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