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은유」
열흘이나 되는 긴긴 연휴를 어찌 보내나, 즐거운 상상에 눈 한번 끔뻑 감았다 떴더니 6일이 흘러 버렸다. 하고 싶은 것은 저만치 밀쳐두고, 후손노릇, 자식노릇, 부모노릇 하느라 이제야 노트북을 펼쳐 든다. 연휴에 책 좀 더 읽고 미뤄 두었던 글도 써야겠다는 계획은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 답게"에 갇혀 매몰된 삶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비루함.
몸과 마음의 피로로 미로 같은 어지러운 말들만 부려 놓았다.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하지도 못하는, 그렇다고 시원하게 덜어내지도 못하는 묵은 체기 같은 말들. 남편을 향한 그 말들이 본주소지
대로 찾아간다면 마음이 좀 후련해질까.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가끔 이렇게 발광을 부린다.
속이 시끄러울 땐 더더욱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달다. 만만치 않게, 아무런 방패도 없이 견뎌야 했던 순간들. 오늘처럼 그 방패가 제 구실을 못할 때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다시 희망의 끈을 붙든다.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쓴 묵은 글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다. 가르마를 타고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려나.
전작, 싸울수록 투명해진다, 글쓰기의 최전선처럼 은유 작가의 글은 역시나 간결하다. 잘 숙성된 김치처럼 일상을 통과하며 발효된 글은 깊고 진하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글로써 먹고살았던 이야기는 잔잔하고 때론 먹먹하다. 고통을 오롯이 겪어 낸 시어 같은 담백한 문장들이 긴 사유를 풀어놓는다. 책 속에서 발견한, 가슴을 울리는 문장이 마중물로 길어 올리는 일상의 단상이 어지럽던 마음을 달래 준다.
아이들이 부모 마음대로 되나. 이제야 번지수를 찾은 듯 그들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각자의 삶을 믿어 보려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나름 삶에 대해 밑그림도 그려 보고, 그렇게 될 줄만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바로 밀고 들어오는 일들. 미성숙의 결과겠지만 시행착오를 함께 감내해야 했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책 읽고 글 쓰는 저자의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 단다. 세상을 알아 가는 방식이 책만이 아니라는 자조 섞인 체념의 문장에 웃음이 난다. 각자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할 수도 있지만, 이 좋은 걸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번지수를 못 찼고 헤맨다. 망각은 욕심에 달라붙는 잉여물인지 수없이 겪고도 또 실수를 저지른다. 미련의 구간을 반복하다 마감하는 생이 아닐지. 책 보다 더 재미있고 호기심을 끄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책과 함께 했던 좋은 기억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다시 찾아오려나. 오지 않아도 할 수 없고.
공부해라, 해서 공부하면 공부가 아니고, 사랑
해라, 해서 사랑하면 이미 사랑이 아니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제 각각의 인생에 놓인 선택지를 오가며 살아가겠지. 피아노만 좋아하던 큰아들이 이루마의 책을 추천했을 때, 당혹스러웠
다는 저자. 좋아하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경험을 전한다. 다른 생각만큼이나 취향도 다를 수 있기에 책 추천이 조심스럽단다. 무심코 나눴던 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내가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닐 텐데.
"쓴다는 것,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아주 시시한 의미밖에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 어쩌면 내 삶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최승자, '워드프로세서')이라고 말하게 된 즈음이다. 난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16쪽)
시대의 도덕에 결박당하지 않고, 시시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려 읽고 썼던 저자의 삶은 글과 책으로 존재한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라는 니체의 말은 '나는 너무 뒤처진 게 아닐까' 비관하는 늦깎이 작가에게 자기만의 보폭으로 길을 가도록, 자기만의 목소리
를 찾아가는 글을 쓰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니체의 문장이라는 연료를 넣은 덕분에 나의 글쓰기는 휘청일지언정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16쪽)"
나 또한 니체의 글을 접하며 삶이 낯설어졌다. 나만의 속도로 내 길을 가야겠다.
인상적인 구절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저자. 좋아하는 책이 겹치는 것은 삶의 변곡점이 비슷해서일까. 책을 읽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눈과 마음을 붙잡았던 문장들. 작가의 필사공책을 엿보는 듯, 문장이 이끌어 낸 경험이 가슴에 일렁임을 만든다. "내 삶은 글에 빚졌다"라고 말하며, 예고 없이 찾아온 고통을 그답게 통과하게 한 글쓰기라는 도구. <쓰기의 말들>이 글쓰기의 진입로가 되어 각자의 글이 출구로 나오길 바라는 저자의 프롤로그가 인상적이다.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103쪽)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 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 오죽하면 이성복 시인이 말했을까.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105쪽) 얼마나 읽고 써야 작가가 말하는 부끄러움의 총량에 다다를까. 쓰고 안 부끄럽기보다 쓰고 부끄러움을 택했다는 저자의 용기와, 진실에 다가서려는 세상의 모든 작가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부끄러움과 대면하는 내 용기 구간은 길고 긴 모양이다.
글이 글을 물고 나온다는 황현산 시인의 말처럼 흰 여백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 내고, 좋은 글은 자신의 몸을 뚫고 나와 다른 이에게 스민다는 작가의 말처럼 용기 구간을 내디뎌 보려 한다. 생각의 물꼬를 터주는 시어 같은 니체의 글과 유머와 위트가 있는 오웰의 글을 닮고 싶다는 저자.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곱씹어 보게 된다. 진실을 담은 글, 간결한 문장들이 울림으로 연결된 글을 쓰고 싶다. 얼마나 더 부끄럽고 아파야 가슴속에 어지러운 말들을 꺼내놓을 수 있을까.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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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다. 8년 전 써둔 글을 퇴고하는데 낯설고 달다. 2년 전 명퇴하고 여전히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경주읍성의 작은 책방지기가 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며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쓰기의 말들_은유_유유 #2017년 10월 5일 글을 쓰다 #2025년 9월 16일 퇴고하다 #어설프게라도 첫 문장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 답게"에 매몰된 삶에서 스스로 나를 구하는 중 #북샵라벤더 책방지기 #경주그림책서점 #경주독립서점 #경주읍성동네책방 #읽고 쓰고 그림책수업하는 28년 전직초등선생님 #대표님 책방차려주셔서 감사해요 # 브런치작가가 되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