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이제 책을 읽을 때면 안경을 벗어야 한다. 그동안은 멀리 있는 것이 안 보여서 안경을 썼었는데 이젠 그럴 나이가 되었다. 속절없이 보내버린 젊은 날들이 후회되고 육체는 노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나이 듦이 싫지만은 않은 것은, 문학이 젊은 시절보다는 조금은 더 잘 읽힌다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는가( "월든"의 제2장 제목 )
2010년 어느 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내 인생의 책이 되게 해준, 작고한 장영희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서점에 들렀다 가벼운 에세이를 읽고 싶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서서 읽고는 책 뒷면의 소개를 통해 이 책을 접하고 사들고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장영희 교수의 따뜻한 에세이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러한 인간이해는 필수조건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방황과 혼돈의 시기를 버티게 해 준 건 문학이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들추고 깨부수고 그 잔해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고 싶지 않고 감추고만 싶은 그 모습들은 점점 아픔에서 수용으로 변해가고, 낯섦에 대한 직시는 불편하지 만 반복을 부른다. 임시방편의 미봉책이 아닌 나의 실존의 틀을 다시 꿰맞추는 느낌. 문학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내게로 왔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스토우 부인은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이제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156쪽)
에밀 시오랑의 책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책이름처럼 우리는 해 뜨는 것을 보기 전에 수없이 포기하고, 놓쳐버린 기회들을 되뇌며 후회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 앞머리는 무성한 곱슬머리이고 뒷머리는 없다. 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어깨와 발에는 날개를 달고 있다. 무성한 앞모습을 보고 기회라는 걸 쉽게 알지 못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달아나버려 뒷모습을 보고도 잡을 수 없다. 어깨와 발의 날개를 달고 한쪽 발을 들고 언제든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를 저울의 신중한 판단과 칼의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포착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글을 써야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미국의 수필가 J.B. 프리스틀리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
"애당초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써야 한다면 무조건 써라. 재미없고, 골치 아프고,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아도 그래도 써라. 전혀 희망은 보이지 않고, 남들은 다 온다는 그 '영감'이라는 것이 오지 않아도 그래도 써라. 기분이 좋든 나쁘든 책상에 가서 그 얼음같이 냉혹한 백지의 도전을 받아들여라." (305쪽)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서 윌리엄 포크너는 말했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318쪽)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척추암으로 전이된 몸이 악화되어 2009년 세상을 떠났다.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의 몸으로 불공평한 현실을 꿋꿋하게 벼리어 내던 삶 속에서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고, 죄와 벌, 멋진 신세계, 위대한 개츠비, 변신, 백경, 분노의 포도, 오만과 편견, 대지, 월든 등 주옥같은 명작을 현실이 녹아든 온화하고 날카로운 문체로 소개한 에세이는 가볍지만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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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지 9년이 흘렀고 나는 경주읍성의 북샵라벤더의 책방지기로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