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에 대한 반항

「전락, 까뮈」

by 라벤더
오, 아가씨, 이번에는 내가 우리 둘을 모두 다 구원할 수 있도록 한번 더 몸을 내던져주십시오!

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 강물로 뛰어드는 소리를 듣는다. 걸음을 멈췄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외마디 비명과 그리고 몇 번 더 이어짐. 끊김. 침묵.

추위와 충격에 휩싸인 채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비를 맞으며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끌라망스는

그렇게 인생에 반전이 될 사건을 겪는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한창나이에, 건강상태는 완벽하고, 재능을 두루 갖추고, 지적인 활동처럼 신체활동에도 능하고,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고, 잠도 잘 자고, 자신에 대해 지극히 만족스러워하지만 적절한 사교술을 통해서만 이를 드러내는, 그런 남자를 말입니다. 이만하면 겸손하게 굴어도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화자찬할 수 있다는 걸 당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30쪽)


젊고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만만한 삶을 살아가던 변호사, 끌라망스. '오랫동안 변함없는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 혼자 선택받았다는 느낌이었지요..... 단 한 사람 안에 그토록 다양하고 훌륭한 재능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단지 우연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32쪽)'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그는 인생과 그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높이에 연연할 정도로 그는 허공에서 자신의 성공을 만끽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믿는 허영, 사랑 없는 관능을 추구하는 냉담함, 내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정의로움의 열변을 토하는 위선, 상대에게 상냥한 굴종을 요구하는 자만, 명령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권력욕, 비극으로 권태를 해결하려는 만용, 주목이나 호평을 의식하는 친절, 공허를 환락으로 해결하려는 비루함, 죽은 자에게 관대해지는 위선.... 성공한 변호사 끌라망스의 이중성의 가면들은 너무나 많다.


무릇 인간이란 남을 지배하든가 남에게 섬김을 받는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잘 압니다. 누구에게나 맑은 공기가 필요하듯 노예란 필요하지요. 명령하는 것은 곧 호흡하는 것이니까요....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배우자나 자식이 있고 독신일 경우엔 개가 있지 않습니까. 요컨대 핵심은. 상대는 대꾸할 권리가 없으나 자신은 화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한테 말대답해서는 안된다'라는 상투적인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좀 이상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한 테가 아니면 대체 누구한테 말대답을 한단 말입니까? (47쪽)


그런데 이상하다. 다른 세계의 사람 같던 그가 낯설지 않다. 매력적인 야누스의 이중 얼굴은 결국 우리들의 모습인 걸까? '장바띠스뜨 끌라망스, 희극배우'라는 명함이 그만의 것이 아닌 걸까? 남들보다 현명하다고 자처하는 허영과 권력욕, 친절을 베풀고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우월감, 나 자신 외에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으로 호인으로 불리길 원하는 욕심도 그만의 것이 아닌 걸까?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늦을 겁니다.

'너무 늦었어, 너무 늦은 거야.....'순식간에 타인의 죽음을 방관한 끌라망스는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끌라망스와는 다른 선택을 할 거라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지하철선로에서 떨어진 아이를 구하는 용기 있는 청년의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위급상황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타인을 도와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누군가 도와줄 거라 믿으며 안타까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끌라망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물론 빨리 위급상황을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방관자로 머문다.


저 잿더미들을 보십시오. 여기서는 모래언덕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또 오른편으로는 잿빛 제방이 뻗어 있고, 발치에 펼쳐진 납빛 모래사장, 저 앞에 희미한 잿물 빛깔의 바다와 어슴푸레한 물을 반영하고 있는 드넓은 하늘까지, 생기 없는 지옥이 따로 없군요!.... 광채라고는 전혀 없고 공간은 무색인 데다 생명은 모두 죽어 있으니, 과연 우주적인 소멸이요, 눈에 보이는 허무라 이를 만하지 않습니까? (72쪽)


타인의 죽음을 방관한 사건으로 끌라망스는 자신의 양심과 대면한다. 그동안의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냉혹함과 엘리트의 위선에 대해 뼈저린 후회와 고통을 느끼고 좌절의 나락에서 추락하듯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속죄판사로 삶을 살아간다. 평지와 지하를 혐오하던 그가 낮은 땅, 무채색의 허무의 공간으로 간 것은 의미심장하다. 전락(轉落)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단테의 "신곡"지옥편 중 깔때기 모양의 지옥에서 중죄인들이 처벌받는다는 제일 밑, 악몽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의 지옥인 암스테르담으로의 전락.


그는 양심과 마주한 사건으로 부조리에 반항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더 높은 곳을 지향하던 탐욕, 우월감, 양면성, 난폭함, 무능함, 위선등의 인간의 본질적인 이중성을 깨닫고 좌절대신 참회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과거의 삶에서 자신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부조리함과 마주 서고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을 먼저 신랄하게 비판하며 타인의 비판을 이끌어내는 속죄판사의 길을 걸으며 절망의 나락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전락의 순간에 좌절 또는 회피하기보다 부조리에 대한 각성과 이에 맞서려는 반항 의지를 다지는 것. 죽음마저도 의연하게 맞이하는 그는 진정 용기 있는 인간이 아닌가. 혼돈의 순간에 끌라망스처럼 의식의 각성을 이뤄내는 것은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 아닐까.


#알베르 까뮈_전락 #2016년 5월 21일 작성글 #실존주의작가 #작가가 현재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부조리에 대한 참회 #얇지만 내용은 얇지 않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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