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2017년 3월, 세월호가 1072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아홉 명의 돌아오지 못한 영혼이 하늘에 리본구름을 만들었나.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마침내 떠오른 세월호가 아픈 이별을 감내했던 유가족
들에게 위로가 되길.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은 상상 저너머에 있다. 아니다.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다. 세월호의 진실은 언제쯤 유가족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어딘지 음습한 집안 기운을 느꼈다. 무슨 일이 났나? 뉴스를 보며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엄마와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 외할머니가 사시는 동네의 나들이에서 배의 전복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명단에 외할머니의 이름은 없었다. 뒤늦게 할머니를 찾았고 갑작스러운 이별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온몸이 마비되기 시작했고 아빠는 엄마를 주무르며 목놓아 울었다. 병원에서 몸을 추스르고 돌아온 엄마는 말과 표정을 잃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절대적 사랑을 주는 존재였다. 부모에게서 목말랐던 사랑을 외할머니에게서 느꼈다. 방학이 시작되면 외갓집으로 달려갔고, "에구구 내 강아지 왔는가"
라며 달려가는 나를 꼭 안아주셨다. 외할머니 친구의 손녀는 방학 때만 만나는 친구다. 두 분이 부르러 올 때까지 친구와 나는 온몸에 흙 때를 묻히며 놀았다. 마당 우물가에서 대충 손을 씻고 대청마루에서 먹는 할머니의 밥은 꿀맛이다. 돌독에 밥을 넣어갈은 고추로 만든 겉절이와 팥칼국수, 새우젓을 넣은 호박찌개, 시골된장을 풀어 감자와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 정이 옴팍 들었던 한 달 여의 시간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별의 설움이 대단했다. 밥도 넘어가질 않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할머니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외할머니를 어느 날 갑자기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은 일상을 무너트린다. 엄마를 잃은 엄마와 할머니를 잃은 나는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세월호사건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한순간 온전한 사랑과 이별해야 했던 슬픔은 그들이 보냈을 3년의 시간으로도 메워지지 않았으리라. 어두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진실이 오랜 시간을 버티고 이제야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감추려는 이들과 진실을 찾으려는 이들. 아홉 명의 별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돌아왔으면 좋겠다. 정의가 살아있고 그래도 이 나라가 살만한 나라라는 희망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랬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쇼코의 미소를 두 번 읽었다. 가슴깊이 눅진한 사랑을 품었으면서도 표현에 서툰 소유의 할아버지. 일본에서 온 쇼코와 더 정겹게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 소유는 서운함을 느낀다.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쇼코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17쪽) 보여주고 싶은 가면 아래 민낯은 알 길이 없다. 상냥함 이면에 상처를 품고 있던 쇼코. 쇼코의 진실을 알고 우월감을 느꼈던 소유. 쇼코를 통해 할아버지의 뭉클한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소유. 그들은 세월과 더불어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할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은 부족한 재능과 열정을 깨닫게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한 조급함을 내려놓게 한다. 희망하고 시도하는 일마다 결과를 만들어
내기에 삶은 녹록지 않다. 세상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신만은 특별한 삶을 살 것이라고 믿었던 소유의 깨달음은 젊은 날의 나를 보는 듯했다. 타고난 재능 없이 맹목적으로 꿈만을 좇는 소유에게서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오랜 세월 지지부진한 글쓰기를 놓지 못한 맹목적인 사랑과 미련. 작가의 진솔한 후기가 그래서 더 뭉클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유와 쇼코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리라. 세상의 많은 소유와 쇼코들은 시행
착오를 통과하며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아픔과 꿈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공감하며 조금씩 깊어질 것이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서로를 미워한다. "신짜오 신짜오"의 엄마 아빠는 그런 사이다. 불타오르던 사랑이 너무 뜨거웠을까.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소통의 부재를 겪는 주인공의 부모는 투이네를 매개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냉랭한 분위기에 온기가 돌고,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제삼자인 응웬 아줌마는
알아준다. 아줌마는 엄마가 사랑이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엄마처럼 섬세한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면서, 엄마는 아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116쪽)
응웬 아줌마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봤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어땠는지,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는지, 바다를 가보았는지, 한국의 바다는 어떤 색인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음식은 무엇인지. 아줌마의 질문은 공부는 잘하냐, 왜 이렇게 키가 작냐, 커서 뭐 할 거냐 물어대는 다른 어른들의 것과는 달랐다. 진심 어린 관심을 받고 있다는 기쁨에 나는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아줌마 앞에서 떠들어댔다.
칭찬받을 일을 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받았던 경험은 삶의 에너지가 된다. 쇼코가 자신을 사랑스럽게 보던 소유의 할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처럼 "신짜오 신짜오"의 엄마는 자신의 내면을 읽어주는 응웬 아줌마로 인해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연다. 가식적인 관심은 폭력일 수 있다. 서로의 존재를 경멸하던 부모
아래서 상처 입은 날개를 접은 채 웅크리고 있던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응웬 아줌마의 관심은 진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잊어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잊지 못한다. 진심 어린 사과에도 역사가 주고받은 상처의 골은 깊기만 하다. 응웬 아줌마는 따뜻한 관심으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세상의 온도를 높이려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권력의 맛에 취한 집단은 언론을 통제하고 거짓소문을 퍼트리며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간다. 그들이 말하는 법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의 순애 남편도 그런 희생자 중 하나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없었던 것처럼 쉽게 쉽게 묻어버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그래서 그 앞에는 뭐가 있는 건지. 그 앞에 뭐가 있기에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짓들을 없었던 일인 것처럼 잊은 채 살아가야 하는 건지. 저는 그저 생각만 했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이런 세상에 부역한 거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 없을 거예요. 전 해옥 씨 같은 용기가 없어요.(174쪽) 순애언니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딸을 키운다. 존재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되어준 아이. 아이와의 첫 만남의 감동을 욕심으로 덮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세월이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적당한 관계만을 만들어간다는 문장은 허를 찌른다. 삶의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낸 순애의 작고도 깊은 한마디. "해옥아, 기억해.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어."(190쪽) 순애언니는 연약함 속에 강함을 품고 있다. 사랑과 애증, 그리고 이별을 묵직하고도 담담하게 담아낸다.
아이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어떻게 자라고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살아서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모는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모의 등에 붙어서 작은 숨을 쉬는 아이가 이모의 몸 밖에 붙어 있는 심장 같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종용받는 세상은 생긴 대로 살도록 놔두지 않는다.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만 한다는 압박감과 두려움은 "한지와 영주"속의 영주를 조여 온다. 영주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
한다. 수도원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의 한지. 낯선 공간에서 나이로비에서 온 한지는 마음속을 터놓는 존재다. 쇼코와 소유의 할아버지처럼. 소통에도 곧 한계가 온다. 다른 언어로 소통의 부재를 느낀 한지와 영주처럼 "먼 곳에서 온 노래"의 미진과 율라도 깊숙한 내면을 나누는 존재이면서도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율라의 공허를 채워준 미진. 도스토옙스키가 자의식이 강한 미진과 소은을 묶어주었지만 이해와 오해는 삶의 틈을 만들고 메워간다. 성숙한 이별은 어떤 모습일까. 깨달음은 이별뒤에 뒤늦게 온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의 순애와 남편, "미카엘라"의 아빠와 엄마는 비슷한 삶이다. 다른 게 있다면 미카엘라는 가장의 역할을 못한다는 이유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아빠를 비난한다. 미련스럽게 아빠를 위하고 보살피는 엄마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서울로 미사를 보러 와서도 딸에게 신세 지기를 주저한다. 세상과 맞서 싸우기보다 나를 변형해서 맞춰 살고 싶은 미카엘라.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려는 광화문광장
의 모습은 낯선 세계다. 자신과 가족을 너머 타인을 돕고 애도하는 모습은 세상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리라. 공감과 연대만이 거친 세상의 길을 조금은 덜 멀고 덜 힘들게 할 것이다. 인디언의 말에도 있지 않은가. 함께 가야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비밀"도 조손 간의 애틋한 정을 그리고 있다. 부모를 대신해서 지민을 키웠던 말자의 애틋한 정은 눈물겹다. 귀하디 귀한 존재로 키워내고 싶은 마음은 세상의 모든 부모, 조부모의 맘이리라. 지민의 죽음을 숨기려는 영숙과 남편, 지민을 그리워하는 말자의 서사가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부드러움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고 노자가 말했던가. 소설의 인물들은 어딘지 어리숙하고 연약하다. 다른 언어로 소통의 부재를 겪는 인물들이 어쩐지 같은 언어를 쓰고도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 같다. 담긴 그릇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는 물처럼 부드러움은 유연하게 삶을 바라보면서도 강한 시대와 인물을 바꿔간다. 그걸 성숙이라고 말해야 할까. 부침을 겪으면서도 세월과 더불어 조금씩 사유의 한계를 넓혀간다.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시대가 준 상처
들을 온기로 끌어안는다. 부드러움의 승리다. 소설의 감동은 읽을수록 깊어진다. 작가의 첫 소설이란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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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5일에 썼던 이 글을 퇴고하고 있는 지금,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진심이 담긴 사과만을 받았을 뿐이다. 이후 국가가 놓친 소중한 많은 생명들. 유가족들은 속울음으로 버티며 살아내고 있다. 작년 12월 3일은 계엄령.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한 자들의 거짓된 변명을 듣고 있자니 기가 막힌다. 국민이 아니면 진즉 망했을 나라다. 위대하다 못해 존경스럽다. 책방지기로서 좋은 책을 꾸준히 알릴 것이다. 역사를 잊지 않고 꾸준히 쓸 것이다.
작가는 《쇼코의 미소》이후로《내게 무해한 사람》《밝은 밤》등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본 책은 리커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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