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철학 수업, 이진경」
자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철학적 사유가 삶에 필요한 이유다.
마음속에 미해결과제를 부여잡고 힘들어했던 시절이 있었다. 출구를 알 수 없고 남들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혼돈의 시간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나의 이 힘듦의 원인은 무엇일까? 위로와 힐링의 책은 임시방편이었을 뿐, 더욱더 갈증만을 느끼게 했다. 방황의 길 끝에서 만났던 철학책과 소설들. 책의 글귀들은 보잘것없는 인간존재에 대한 본모습을 보여주며 행복에 대한 나의 허상을 부셔냈다. 철학책에 파묻혀 나의 모습,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힘이 났다. 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였던 타인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철학책은 행복의 마중물처럼 내 인생에 그렇게 다가왔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노마디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으로 접했던 이진경 작가의 이 책은, 긍정, 고통, 기쁨, 꿈, 매혹, 사랑, 우정, 돈, 지성, 욕망, 속도, 공부 등 삶 속에서 만나는 일들과 "자유"에 대한 사유가 깃든 책이다. 억압이나 구속의 부재와 같은 방종의 자유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세공품과 같은 자유말이다.
'피로감이 클수록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 내며 대단한 일인 양 대하게 되고,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넘어서야 할 고통을 회피하면서 점점 작은 일들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손쉬운 도피처를 찾게 되지만, 그것은 삶의 고통을 덜어줄 리 없습니다. 반대로 고통을 느끼는 일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줄 뿐이지요. 점점 더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고통을 느끼게 해 줄 뿐이지요.' (머리말 중에서)
저자의 머리말은 삶의 모습을 정확히 진단했고, 찾은 방법들을 계속해나가야 할 이유를 제시했다.
'삶의 크기란 넘어서야 할 고통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저자의 말은 외면하고 묻어두었던 고통들을 대면할 용기를 준다. 저자가 말하는 "자유"롭기 위한 훈련을 따라가 보자.
# 삶과 자유
'고통이란 '유기체'의 부적절한 삶의 방식에 대한 기관이나 세포들의 호소와 항의의 목소리고, 질병이란 그 부적절한 삶의 방식에 잠식된 신체의 비명소리다.(43쪽)' 신체의 비명소리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해줬으면서도, 부적절한 삶의 방식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들을 미봉책으로 덮어버리고 외면했던 것이다. 삶의 깊이를 가르쳐주는 고통을. '엄청난 고통의 훈련, 오직 이러한 훈련만이 지금까지 인간의 모든 향상을 이루어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가!(니체, "선악의 저편 "중에서)' 그렇다면 고통과 마주하며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어쩌면 '삶의 넘어섬'을 만들어가는 용기의 행동이 아닐까.
# 만남과 자유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좋하하고, 내가 늘 하던 것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사고도, 감각도, 행동도, 욕망도 모두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나'의 주변을 , '자아'의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고 있다.(94쪽)'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자아가 만든 경계 안에 머무르며 제한적인 경험과 생각들만을 할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랑과 매혹의 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사람에게만 한정된 단어는 아니다. 사랑과 매혹을 통해서만이 내가 만든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좋아하는 그 무엇을 위해 몸과 마음을 낼 수 있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는 사건이다.(95쪽)' 사랑과 매혹의 결과보다는 그 끌림의 감정과 예전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해 보는 경험들, '사랑하며 얻었던 감각과 세계(95쪽)'가 소중한 것이다.
# 능력과 자유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숨겨진 정원과 식물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가까운 시간에 혹은 먼 후일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신조차(니체, "즐거운 학문"중에서)' 우리가 사용하다가는 지적 능력이 두뇌의 5퍼센트도 안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나 남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림을 경쟁적으로 알려주는 우리나라교육은 그 5퍼센트 마저도 사용하지 못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충분한 시간만 부여한다면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속도전에 능한 인간을 육성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에너지를 내부로 돌려 나의 가능성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것, 나만의 정원과 식물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 욕망과 자유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가 바느질하다 남겨놓은 헝겊조각들과 단추들로 인형옷을 만드는 일에 빠졌었다. 내가 사랑하는 인형에게 나만의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어주었던 기억은 내가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인식된다.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어느 날 이모가 선물한 3권짜리 전래동화책은 실밥이 풀려버릴 정도로 읽었다. 중고등 시절에도 책을 좋아했고, 들려주기를 좋아했고, 간헐적으로 일기와 메모를 써왔던 기억도 있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미술시간에 손데생을 했다. 선생님은 미술 배운 적이 있었냐며 미술 할 생각이 없는지 물으셨다. 그동안 나는 미술을 할 생각도 없었고 내게 작으나마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잠깐 선생님의 칭찬이 기분 좋았을 뿐 나는 미술로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방면에 관심사도 많고 조금씩만 잘할 뿐이었다.
'어떤 일을 정말 잘할 수 있을지, 좋아할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선, 특별한 재능이나 인연이 있는 게 아니면, 필경 고통이나 지루함을 수반하는 어려움의 문턱과 대면하고 그것을 넘어선 깊이까지 들어가 보아야 한다.(212쪽)' 내 몸과 정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좋아할 수 있을지 아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 경험이란 것도 맛보기 정도의 경험이 아니라 지루함과 어려움의 문턱을 넘어서는 경험 이어야 한다. 나의 삶을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모지스 할머닌 75세에 그림을 시작했고 30년간 1600점의 그림을 그리셨다. '잘할 수 있는 것을 긍정하고, 선택한 삶으로 야기되는 어떤 결과도 긍정한다.(233쪽)'면 진정으로 "그들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로운 삶은 두 번의 긍정에서 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정욕망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속도로 공부하며 살고 있다면 영원히 학생이다.
나의 삶을 시작하기에 '이미 늦었어'의 시제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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