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이 막혔던 아침, 작은 시도로 풀다.
난 저렴이 만년필로 모닝페이지를 쓴다.
그날의 감정에 따라 펜의 색깔도 달라진다.
싱그런 날엔 초록색,
비 오는 날엔 노란색,
좀 튀고 싶은 날엔 보라색,
필사를 할 땐 블루 블랙,
검은색은
내 노트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항상 쓰던 블루 계열의 만년필이 나오지 않았다.
여유분의 펜촉도 없어서,
몇 달째 필통 속에만 들어 있던 검은색 만년필을 꺼냈다.
새 펜촉을 교체했는데 잉크가 나오지 않는다.
혹시 불량인가 싶어 다른 것으로 다시 교체했지만 역시 안된다.
두 개나 불량일 리가 없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리필 심은 멀쩡하고
촉 부분이 막힌 것 같았다.
순간,
'버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버릴 거라면 물이라도
한 번 부어보자.
안되면 말고.
채혈침으로 잉크 입구를 살살 돌려
넣었다 뺐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세면대로 가서
만년필에 샤워를 시켰다.
검은 잉크가 세면대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아이고, 못 산다.
바쁜 아침에 일을 만들었네.."
만년필을 세면대에 던져두고
몇 분 뒤, 휴지로 깨끗이 닦아냈다.
그리고 노트 위에 슥_ 그어보았다.
어라!
색깔이 나온다.
시원하게 잘 써진다.
그 순간,
막혀있던 내 마음도
뚫어 뻥으로 뻥 뚫린 기분이었다.
답답했던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시원했다.
만년필도,
다시 살아났다.
왜 바로 버릴 생각만 했을까.
막히면 풀어주면 되는데.
음식 먹고 체했을 때도,
변기가 막혔을 때도,
겨울에 세탁기가 얼었을 때도,
조금씩 살살 다루며
다시 시도해 보면 결국 풀리는데.
인생도 그렇다.
하다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어떻게 매번 잘 되겠는가.
잠시 쉬었다 가도 되고,
힘들면 잠시 숨 고르기 했다가
다시 가면 된다.
정답은 애초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늘 정답지를 찾듯 고민한다.
'어떻게?'물음의 답은
항상 나에게 있다.
만년필이 나오지 않아
버리려 했던 내 마음,
그 순간 "물을 부어보자"했던 작은 기발함.
다른 사람은
어처구니없다고 할지도 모르지.
쨌든
만년필 나오잖아!
정답은 없다.
나한테 맞는 걸 찾으면 된다.
직선이든,
곡선이든,
꺾임이든.
다른 사람에겐
아닐지 몰라도
나한테는
맞는 길일 수 있다.
오늘 하루도 내가 만들어 간다.
나는 나다.
그므시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