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싫었던 건 산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요즘의 나

by 그므시라꼬

엄마와 온천 여행을 갔다가 갑자기 가게 된 악어봉.


스파를 가기로 했던 여행이라 등산복은 따로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의 마음이 바뀌었다.

날씨도 춥고 하니 문경새재를 다녀오자고 하니

거긴 많이 다녀온 곳이라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으시단다.


나는 겨울산이 싫다.

차갑고,

미끄럽고,

풍경은 잿빛뿐이라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날씨도 추운데 산에 간다고

출발하기 전부터 엄마에게 짜증부터 냈다.


얼마 전,

눈길에 출근하다 엄청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올 겨울은

여행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가게 된 곳이 충주의 악어봉이었다.


등산복이 없어서

래시가드와 캐리어에 있는 옷들을 꺼내 겹겹이 껴입고

마스크를 하고 출발했다.

왕복 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짧았지만

악어봉은 이름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계단과 돌들...

급경사가 심하고

돌이 너무 많아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고,

내려올 때는 더더욱 위험했다.

차에 등산화와 스틱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완만한 둘레길은

걸으면서 풍광을 볼 수 있지만

산은 계속 앞만 보게 된다.

돌을 피하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써야 한다.

새들의 지저귐도

푸르름도 없는 겨울산은 너무 싫다.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훨씬 더 무서운 악어봉.

스틱에 온몸을 맡기고 한 발, 한 발

정신을 바짝 차려 내려왔다.

자칫 발을 삐끗하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 걱정 따위는 전혀 상관없는 듯

엄마는 달랐다.

너무 좋다며

나무를 끌어안고 계속 "좋다, 좋다"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출발 전에 괜히 짜증 냈던 내가 떠올라 조금 미안해졌다.


그날 내가 싫었던 건 겨울산이 아니라,

무언가를 또 애써야 한다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에너지가 바닥이라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게 된 여행이라

내 마음이 더 불편했나 보다.


항상 엄마한테

잘해야지, 다정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막상 만나면 또 투덜대는 딸이 된다.


올겨울 여행은

이걸로 '끝'하고 봄에 가자고 엄마랑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여행은

산을 오르기보다는

풍광을 보며 천천히 걷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내 속도에 맞춰 숨 돌릴 수 있는 길,

엄마와 나란히

말없이 걸어도 괜찮은 그런 길.


그 바람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