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지났다.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단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부터 낮의 길이가 더 길어지겠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길어진 햇살만큼 하루가 다르게 우쭐우쭐 자랄 것이다. 들판의 작은 식물들도 쏙쑥 더 잘 크겠지. 하늘, 땅, 바람, 햇살에 풀꽃들도 소옥소옥 피어난다. 논밭들도 슬금슬금 기지개를 켜고, 흙도 가려운지 이곳저곳에서 움틀움틀 들썩이고 있다. 긴 햇살에 삼월의 강 하나가 훌쩍 지나간다. 소리 없이 흘러와 푸른 풀밭 하나 일궈 놓고 가버렸다. 바람 부는 3월이 지나간다.
이맘때쯤 시골 외갓집 동네도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나는 이웃에 사는 작은 외할아버지 집의 사촌 이모들과 아침부터 떠들썩하게 소풍 가듯 대문을 나섰다. 들에는 배추흰나비 떼가 날아오르고 민들레꽃이 군락을 이루어 노랑노랑노랑이 지천으로 펼쳐져 있다. 앙증맞은 꽃다지와 보랏빛 제비꽃이 뒤질세라 밭 언덕에 청초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민다. 들판에 있는 객토는 얼룩말 줄무늬처럼 단정히 갈아져 파종을 기다린다. 들로 나선 우리는 각자 작은 바구니 하나씩을 옆구리에 끼고 호미를 그 안에 담았다. 모처럼의 일요일, 학교 다니는 작은이모 두 명과 큰이모 세 명 그리고 나 모두 여섯이 모였다. 위로 큰이모 셋은 우리와 놀거나 어떤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랜만에 제일 큰이모가 집에 내려왔기 때문에 냉이 캐러 모두 모인 것이다.
제일 큰이모는 인제 신남이라는 곳에서 양장점에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천 조각들을 한 보따리씩 가져왔는데, 짜투리 천이라 진짜 옷을 해 입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막내이모와 나의 인형 놀이에 써먹었다. 천 조각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양단이다. 양단 조각들은 반짝이가 들어가 있고 색상이 빨강 초록 파랑 등 선명한 색들이어서 옷을 만들면 고급스러웠다. 우리는 양단과 포플린으로 치마와 윗도리, 원피스 등을 만들고 뻣뻣한 옥양목으로는 이불을 만들었다. 큰이모는 언제나 식구들에게 대환영을 받았다.
둘째 이모는 중학교을 졸업하고 바로 편물을 배웠다. 사촌이모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멋쟁이다. 머리에 천으로 만든 넓적한 머리띠를 하거나 손수건을 삼각형으로 접어 머리에 썼다. 그런 모습은 달력에 나와 있는 영화배우처럼 멋져 보였다. 읍내에 나갈 때 둥근 단추가 세 개 정도 달린 허리 잘록한 윗도리와 항아리 스커트를 입었다. 그 당시 둘째 이모는 면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 선생님과 연애 중이었다. 그분은 법대를 나와 선생님 하면서 고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이모는 그분의 뒷바라지를 한다고 매일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집에 있을 때 둘째 이모는 편물대에서 옷을 짰다. 겨울에는 화롯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입었던 털옷의 털실을 풀어 주전자 주둥이로 실을 빼내어 뜨거운 김을 쐬었다. 신기하게도 구불구불하던 털실은 주전자 주둥이를 통과해서 나오는 동안 좍 펴졌다. 헌 옷이 새 옷으로 변신하는 건 정말 신기했다.
사촌 이모 중 막내 이모는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아서 제일 친하게 지냈다. 막내이모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하루는 얼마나 긴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사촌 이모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들판에 퍼져있는 냉이와 달래를 보자마자 앉아서 나물을 캐기 시작한다. 이모들과 함께 나물 캐러 갈 때는 나도 호미를 가져갔다. 땅에 바짝 붙어서 올라오는 냉이는 이파리가 뾰족뾰족하고 뿌리가 털처럼 풍성하다. 어린 냉이보다 조금 덩치 큰 냉이를 캘 때는 마음이 뿌듯했다. 한곳에 모여 있는 냉이는 은근히 경쟁심을 부추겼다. 바구니나 양재기에 누가 더 많이 냉이를 캤는지 서로 흘긋흘긋 본다. 하던 이야기도 멈추고 나물을 캤다. 달래는 풀과 구별이 어려워서 사실 나는 포기했다. 나물을 캐다 보면 질척한 흙이 신발에 달라붙는다. 신발 둘레에 흙이 점점 불어나 신을 감싸 안으면 발이 무척 시렸다. 손도 발갛게 부어오른다. 손이 시려 제대로 호미를 쥘 수 없다. 하지만 이모들이 냉이를 푹푹 캐서 바구니에 넣는 걸 보면 나도 무턱대고 호미질을 해댔다.
햇빛이 머리 위에서 해지는 쪽으로 조금 기울면 이모들이 “그만 캐자’ 하면서 허리를 폈다. 모두 바구니에 수북하게 나물이 들어있다. 막내이모와 내가 바구니에 반쯤 채워진 냉이를 의기양양하게 보여주면 이모들은 ”제법 많이 캤구나“ 하면서 자기네 바구니에서 냉이와 달래를 한 웅큼 집어서 우리 바구니에 넣어줬다. 주위를 돌아보면 여전히 밭이랑이나 둔덕에 냉이가 파릇파릇 돋아있다. 이모들은 작은 나뭇가지를 가지고 신발에 묻은 흙더미를 털어내고 내 신발에 묻은 흙도 털어줬다. 손이 시리고 아프기도 했지만, 바구니에 담긴 냉이와 달래를 보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제일 큰 사촌 이모는 살림 밑천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와 냉이를 캐고 직장으로 돌아가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귀던 남자와 길을 걷다가 뚜껑 열린 맨홀에 빠졌다는 것이다. 나는 막내이모 얘기를 듣고 그 남자가 이모를 밀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큰이모가 가고 난 뒤 얼마 안 있다가 둘째 이모가 고시생 선생님과 결혼을 했다. 시끌벅적하던 작은 외할아버지 댁에도 쓸쓸한 고요가 자주 찾아왔다. 막내이모와 나는 갑자기 인형놀이나 소꿉놀이가 시들해졌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편물대 긴 바늘이 출렁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자 우리는 얼마 동안 햇볕 드는 담장에 기대서서 먼 산만 바라보곤 했다. 그 봄에 다시 냉이를 캐러 들판에 나가지 않았다. 거칠고 지친 봄날의 강 하나가 우리의 마음 밭에 얼음물로 밀려왔다가 빠져나갔다.
여전히 냉이와 꽃다지는 지천으로 피고 진다. 추위 가신 봄볕에 바구니와 호미 들고 들로 나가 달래 냉이라도 캐고 싶어진다. 아릿하기도 하고 저릿하기도 한 가슴에 푸르게 부푼 삼월의 강 하나가 내게로 왔다가 지나간다. 지난겨울 추위를 잘 지냈느냐고, 유년의 그리움 자잘한 가지까지 안 죽이고 살려냈냐고 묻는다. 까치의 아침 인사가 문득 그리운 봄날이다. 가슴 속 마른 텃밭에 새 물줄기가 흐르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