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반칠환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은가?
겨우내 눈의 무게를 못 이겨 탁 탁 소리를 내며 부러지던 나뭇가지 소리가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집 뒤에 있는 야산과 들판 그리고 벼 밑둥치에 살짝 숨어있던 얼음은 개구리가 눈 뜨기 전에 벌써 땅속에서 졸졸 흘러나온다. 누가 붙잡을 새도 없이 얼음은 종종걸음으로 부드러워진 햇살 속으로, 또는 뭉게구름이 되어 사라진다.
외갓집 앞마당 한쪽에 있는 화단에도 얼음이 녹아 솔솔 노랫소리를 내며 작은 돌 틈새로 물이 흐른다. 며칠 날씨가 따뜻해지더니 햇빛이 잘 비치는 땅 쪽에서 연한 연두빛 싹이 모습을 나타낸다. 꽃들이 새싹을 틔우기 전 야생의 풀들이 먼저와 고개를 내민다. 방아개비 모양의 바랭이풀이나 노란 목도리 같은 미역취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처럼 화단 구석진 곳에 먼저 자리 잡고 있다. 화단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들이 심어져 있다. 작은 터널을 이루는 포도넝쿨, 해바라기, 키다리 노란꽃, 백일홍, 작약, 맨드라미, 백일홍, 국화, 분꽃 등 여럿이다.
할머니는 화단의 얼음물기가 빠져 흙이 포슬포슬해지면 쌀뜨물을 받아놓으셨다. 화단에 응달이 걷어지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면 “응애야, 이 물을 화단에 뿌려라”하면서 쌀뜨물이 담긴 바가지를 주신다. 처음에는 바가지 물을 한 곳에 휘익 부었다. 할머니는 다음 바가지로 ‘이렇게 살살 골고루 뿌려야지’ 하면서 쌀뜨물을 화단 이곳저곳에 뿌리신다.
어쩌다 할아버지가 하얀 김이 나는 세숫물을 화단에 뿌리면 할머니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아유, 저저 저 냥반 어쩌려구 그래요오’ 하면서 소리를 지르셨다. 할머니는 가끔 화단에 설거지를 하고 난 물도 뿌렸는데, 물이 완전히 식은 다음 화단에 버리셨다. 설거지를 끝낸 물은 그릇의 밥풀데기와 반찬 찌끼를 떼어 행주만으로 닦은 물이어서 거름이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쌀뜨물을 왜 화단에 버리는지, 왜 뜨거운 물을 꼭 식혀서 버려야하는지 몰랐다.
“할머니, 왜 화단에 쌀뜨물을 줘요?”
“할머니, 왜 뜨거운 물을 화단에 뿌리면 안돼요?”
나는 할머니가 설명해주신 것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는 건 쌀뜨물에 양분이 있어서 뿌리들이 이 물을 먹으면 딱딱한 땅을 비집고 올라올 기운이 생긴다는 거다. 또 땅 속 벌레들이 겨우내 잠자다가 봄볕에 바깥세상이 시끄러워지면 그 소리를 듣고 무작정 땅 위로 올라온다. 그때 뜨거운 물을 버리면 벌레들이 데어서 죽을 수 있다. 땅을 좋게 만드는 벌레들이 죽으면 안된다는 거였다. 화단은 할머니께서 유일하게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두 가지의 불문율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의 화단에 지켜졌다.
화단에 싹이 돋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매일 궁금한 게 하나 씩 생겨났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저 싹을 딱딱한 땅 위로 밀어낼까?, 꽃은 왜 한 가지 색이 아니고 여러 가지 색일까? 채송화 이파리들은 똑 같은데 왜 꽃 색깔이 노랑, 빨강, 분홍색일까? 씨앗에다가 누가 색칠을 했을까? 할머니는 ‘한 엄마 뱃속에서 자식이 나와도 얼굴 생김이 다른 것처럼 꽃들도 생김생김이 다 다르다.’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런데 누가 땅 위로 싹을 밀어내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정말 어떤 요리사가 땅 속에서 꽝꽝 언 냉동재료로 새싹을 만들어내는지 모를 일이다.
아침 햇살에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아슴아슴한 우윳빛 김을 뿜어내고 있으니 냉동재료인 것만은 틀림없다. 지금까지도 꽃이 피기 시작하면 ‘땅 속에서 누가 저런 꽃과 풀들을 땅 위로 보낼까?’라는 생각을 골똘히 할 때가 있다. 제일 궁금한 건 한 꽃에 여러 색깔이 있는 경우다. 화단에서 내 눈을 가장 끄는 것은 다알리아꽃이다. 다른 꽃들은 한 줄기에 한 가지 색으로 꽃이 핀다. 채송화는 다른 색깔이 있지만 줄기가 다르다. 그런데 다알리아는 꽃 한송이에 짙은 붉은 색과 연한 분홍색이 함께 섞여있다. 이러한 의문은 성장해서도 쭉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꽃이 피고 파란 잎이 돋아나자 개미들은 요란하게 꽃 잎사귀 사이로 돌아다니고, 소들은 콧김을 휭 내뿜으면서 짚을 씹는다. 마당에서는 참새소리가 요란하다. 산비둘기도 먼 곳에서 꾸르륵 꾹꾹 기지개를 켠다. 외갓집 뜰 안이 소란스럽다. 정작 할머니는 꽃밭에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날씨가 마른 날 꽃밭에 물주는 거 외에 꽃향기를 맡거나 꽃을 바라보거나 꽃을 만지는 일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가끔씩 화단 주위에 풀이 뽑혀져 있는 걸 보면 아침 일찍 꽃과 이야기 하나보다. 아니면, 낮에 농사일이 바쁘기 때문에 밤에만 꽃들을 방안으로 불러들이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흰 횟대보에 밤새 피어난 채송화꽃만 보더라도 그 일을 짐작할 수 있다.
화단의 꽃들은 키 순서대로 심어져있다. 맨 앞에는 언제나 채송화가 있다. 키 순서대로 꽃이 피는 건 아니다. 금잔화와 작약, 모란과 해당화가 피고나면 여름 꽃들이 핀다. 키다리 노란꽃은 내 소꿉놀이의 단골 반찬으로, 봉숭아꽃은 손톱에 물들이는데, 해바라기 까만 씨앗은 한 여름 땀 흘리며 놀다가 지친 내게 간식이 된다. 할머니의 화단에 있는 꽃들은 저 혼자 피어있는 게 아니다. 여섯 살 무렵 나는 할머니의 꽃밭에서 개미와 함께 꽃 속에 머물다가 꽃들과 놀다가 꽃이 되기도 했다.
곧 벌들이 떼떼거리며 꽃들에게 모여들겠다. 요리사가 땅속 냉동재료로 만들어 낸 저 파릇파릇한 풀과 울긋불긋한 꽃들에게 나비도 날아오겠지. 올 봄엔 진홍색 채송화만한 생을 펼쳐들고 할머니의 꽃밭 언저리쯤에라도 가야겠다. 쌀뜨물이 퍼졌던 흙을 만지고,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아른 아른 김이 서리는 냉동재료인 꽃과 풀들의 부활을 지켜봐야겠다. 꽃들도 식구였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