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더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야 -
악성 민원으로 인해 삶을 포기한 안타까운 선생님들의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던 무렵 맘카페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교사에게 시시콜콜하게 무리한 민원을 넣는 학부모들을 꾸짖으며 자성하자는 내용이었다. 학부모끼리 상호 계도하는 분위기여서 보기가 좋았다. 그런데 학부모의 글 마무리 부분을 읽으며 허탈해한 기억이 있다.
'저는 이제껏 학교에 딱 한 번 밖에 전화한 적이 없습니다. 문제 학생과 반 편성 떨어뜨려 달라고요.'
학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이런 민원 역시 상당히 무례한 요구다.학급 수가 많은 학교라면 공식적인 입장에서는 ‘약속드릴 수 없다’라고 응대하더라도 혹시 모를 악성 민원이나 교사가 곤란해질 일을 대비하여 내부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규모 학교라면 이런 민원 몇 건을 수용하다 보면 결국 학급 구성원의 고른 배정에 난항을 겪게 되고 학급 간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 민원인들의 요구가 대부분 그렇듯 이런 요구 역시 부모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몇 년 전 드라마 ‘SKY캐슬’의 시청률이 높았던 때 이 드라마와 비슷한 문제 의식을 던졌던 ‘심윤경’의 소설 ‘설이’를 읽은 기억이 있다. 드라마 속 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누구를 위한 일이겠니? 다 너를 위해 우리가 이렇게 애쓰는 거야.”라고...... ‘SKY캐슬’과 ‘설이’를 보면 좋은 교육 환경 아래서 자녀의 성공을 위해 행해지는 부모 코칭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지를 묻게 된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 뒤에 숨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건강한 영혼을 지닌 성숙한 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임을 부모들은 늦기 전에 깨우쳐야 한다.
민원 제기를 통해 우리 아이가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 학교나 교사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나쁜 민원이 아닐 수 있다. 민원을 제기하기 전 이 요구를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물어보자. 학부모가 제기하는 요구 사항을 통해 학생도, 학교도 더불어 성장하길 바라는 민원이라면 학부모는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진다
학교에서 돌아온 남수가 시무룩하다. 오늘 수업 시간에 짝꿍 연균이가 책에 낙서를 했다고, 연균이 때문에 짜증 난다고, 남수는 학교 가기가 싫다고 말한다. 지난번에도 체육 시간 줄을 서 있는 우리 애를 밀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또 그랬다니 갑자기 열이 치솟는다. ‘요 녀석이 우리 애를 뭘로 보는 거지?’ 선생님께 이 일을 당장 알려야겠다고 남수 엄마는 바로 핸드폰을 집어 든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자. 특별한 학생이 아니라면 보통은 다툼에는 상호작용이 있고 상황의 맥락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에서 이야기 할 때는 자기 입장에서 억울한 점만 말하게 된다. 본인은 아무 일도 안 했는데 다가와서 낙서를 했고 몸을 밀쳤다고 말한다. 물론 학급 상황이 다양하니 정말 상대방에게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공격하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교실 상황에서는 대부분 상호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의 이야기만 듣고 부모가 판단하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아이의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은 받아주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흥분하여 다그치듯 묻는 행동은 금물이다. 부모가 속상해하고 흥분하면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교실에서 겪었던 상황보다 훨씬 과장된 표현으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이때 아이가 부모의 눈치를 보며 본인에게 유리한 말만 한다든지, 거짓 상황을 부모에게 전하지 않도록 부모의 표정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속상했겠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의 반응을 보이며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황을 파악하자. 그런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때 설령 본인의 잘못이 드러나더라도 수용되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하며 부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평소 부모와 자녀 관계, 대화 패턴이 자녀의 품성은 물론 모든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
자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확보하면 생각의 여유를 좀 가질 수 있게 된다. 당장 이 일로 선생님께 긴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 나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의 학교생활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상담 신청을 고려할 수도 있다. 시간 확보는 마음의 공간 확보가 가능해진다. 담임 교사와의 상담을 계기로 아이의 학습 태도나 생활 전반에 긍정적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선생님의 전문가적 조언과 부모님의 노력이 함께 한다면 학생은 반드시 긍정적인 성장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사안의 경중보다 서로의 감정 때문에 일이 나쁜 쪽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를 덜 수 있는 대안은 시선을 맞추며 나누는 진정성 있는 소통이다. 선생님과의 전화, 문자를 한 번이라도 덜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