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이와 미녀

1. 엄마와 나 (~2020)

by 복사꽃향기

1967년 나는 2남 4녀를 둔 우리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 언니가 세 명이 있었기에 엄마는 아들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기도로 귀한 오빠를 낳았지만 아들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낳은 자식이 나였다. 그래서 엄마는 딸로는 마지막이 되어라며 붙여준 이름이 '늠이'였다.

사투리의 이름인 늠이는 한마디로 '남'이라는 뜻이다.


어릴 때 이름의 뜻도 모르고 '왜~늠이라고 부를까?' 궁금했지만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태어나서 보니 모두가 늠이라고 불렀다. 집에서 부르는 애칭이름이 언니들도 따로 하나씩 있었기에 그냥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다.

시골에서는 남의 자식이름을 자기 맘대로 갖다 붙여 많이 부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딸 많은 집의 막내딸은 있으나 없으나 관심이 없었다.

그런 서러움이 아닌 서러움은 얼마가지 않았다.


존재감 없는 위치에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갈 즈음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내 밑으로 우량아처럼 건강하고 잘생긴 남동생을 보게 되었다. 허연 달덩이 같은 얼굴에 귀티가 줄줄 흐르는 장군감 같은 풍채를 가지고 태어나 준 것이다.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터 잘 팔아 귀한 남동생을 보게 된 복덩이가 되어있었다. 아마도 내게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천덕꾸러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가끔 시댁 친지분들에게 친정동생이라고 소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친정동생이 맞냐" 면서 지금은 많이 양호해진 죄 없는 내 얼굴을 들먹이며 재차 확인을 하곤 한다.

그나마 착한 동생이 못난이 누나를 한결같이 좋아하고 잘 따라주었기에 이뻐라~ 해주었지만 막내누나를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대했다면 내 성격에 아마 국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남동생이 많이 기어올랐다. 작고 순진한 막내누나의 말은 그다지 무게감이 없었고 비슷한 또래의 나이였기에 같이 철이 없어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남동생이 매일 짓궂게 굴며 괴롭혀도 항상 너그럽게 용서해 주고받아주는 속 넓은 누나 노릇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또 하나가 있었다.


어릴 때 너무도 못생겨 언제부터인가 ‘미녀’라는 별칭이 붙어 다녔다.(그렇게 못 생긴 얼굴은 아니었는데 행동까지 남자아이들처럼 해서 더 그런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미녀라는 소리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못생겼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괴로움을 감당하며 살아야 했다. 사람들은 정식이름을 두고 쉬운 발음으로 지은 별명을 많이 불렀다. 별명은 그 사람의 외적인 특징이나 상징성을 부각해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내 이름은 한마디로 못생겼다고 온 동네방네 알리는 정식 몽순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듣기 좋은 별명이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별명들은 듣는 입장에서 싫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사람의 약점이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별명으로 많이 불렀다. 거의 약을 올리기 위한 의도로 별명을 붙였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나고 짜증 날 수밖에 없다.


어쩌다 길에서 동네 오빠들과 마주치면 여지없이 “미녀야~”하고 알 수 없는 수상한 미소를 지으며 불러댄다. 그 속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못생겼다고 재인식시켜주는 것이다.


그때마다 듣기 싫다는 내색을 있는 대로 표현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너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거의 울다시피 한 얼굴로 엄마에게 일러바쳤다.


엄마는 항상 천군만마였다. 당장 달려가 우리 딸에게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동네 오빠들에게 매섭게 엄포를 놓았다. 기가 죽은 동네오빠들은 엄마 앞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나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더 큰소리로 “미녀야, 어디 가니?” 하면서 내가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길 어귀에 버티고 서서 놀려대기 일쑤였다.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나중엔 마음대로 불러라 하고는 아예 포기를 해버렸다.


그 별명은 무척 오래갔다.


결혼 후에도, 아이 엄마가 된 후에도 친정 동네를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불려졌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친정나들이 갈 때면 그 소리를 들을 우리 아이들은 “엄마 이름은 숙희인데 왜 미녀라고 불러?”하면서 자꾸 물어보았다. 그럴 때 나는 아이들에게 “아저씨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은 모양이야!” 하면서 무시하고 지나갔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땐 좀 부르지 말아 줬으면.....' 하는 바람까지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시간이 말해주듯 나의 속상함도 그 별명이 어느새 애칭으로까지 여겨지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이라도 이뻐지라고 오빠들이 불러준 것이겠지만 그때는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동네를 다니기가 싫었다. 어렸을 땐 놀림감으로 불렀겠지만 조금씩 우리 아이들이 커가자 언제부턴가 “미녀야.” 하는 부름이 줄더니 나중에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나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도 조금 생겼던 것 같다. 아마도 오빠들이 달리 표현할 길 없는 반가움의 표현으로 별명을 불러 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 추억 하나가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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