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와 나 (~2020)
내가 나고 자란 곳은 경상북도에 있는 청도군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청도군 속에서도 더 작은 읍에 속해있는 화양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자랄 때는 이곳이 그다지 좋은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기 좋은 시골 촌동네였다.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명촌 같은 곳이었지만 알고 보면 현지 사람들도 잘 모르는 유적지들이 많이 있다.
다행히도 지자체에서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노력한 결과, 지금은 주변이 너무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멋진 곳이 되었다.
유적지로는 오래전 외적으로부터 읍내를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쌓았던 청도읍성이 있고, 그 안에 더운 여름을 무사히 나기 위해 얼음을 저장해 두었던 석빙고가 있다.
(여름밤이면 여러 마리의 뱀들이 시원한 곳을 찾아 똬리를 틀고 있는 광경을 지금도 가끔 목격되곤 한다)
옆에는 엄한 훈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한 청도서원과 모두 외지로 나가 젊은 사람이 부족한 시골이다 보니 학생이 몇 명 되지 않아 폐교될 위기에 처해 있는 소담스러운 화양초등학교가 인접해 있다.
한때 개그맨 전유성 씨가 청도라는 지역에 반해 한동안 터를 잡아 지내면서 후배 개그맨들을 양성하며 각종 공연을 했던 '철가방'이라는 공연장도 지역 알림에 한몫을 했다. 그리고 대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도자기, 이름 있는 화가들의 그림, 감이 풍부한 지역특성을 모티브로 감물염색작품을 전시하는 곳도 많이 볼 수 있어 청도는 '예술의 도시'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 바라본 앞산에는 남산골이라 이름 지어진 멋진 계곡이 있다.
그 속에는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나지막한 폭포를 품고 있으며 그 물줄기의 결을 따라 너른 바위들이 즐비하게 있어 여름 내내 사람들의 쉼터로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다.
계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거친 듯 묵직한 물소리는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어느새 하루의 고단함을 씻은 듯이 풀어주기도 한다.
그 순간 산골의 아름드리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넘나들던 작은 새들의 소리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되어 마음 곳곳을 달래준다. 그런 위안을 주는 곳이 바로 '남산골'이다.
좀 더 안으로 올라가면 '신둔사'라는 조그마하고 아담한 절도 하나 있다.
신둔사는 1173년 보조국사 지눌이 봉림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으나 1878년 다시 신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신둔사에는 범종각이라는 그렇게 크지 않은 종이 하나 달려있는데 위 천장에는 절에 올린 자식들의 이름이 무수히 적혀 있다.
우리 가족 중에도 유일하게 오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도 아무나 올릴 수 없었다. 절을 지을 때 시주공양으로 돈이나 노동을 지불하여야만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렵게 얻은 귀한 자식이었던 오빠의 이름을 절에 올려놓고 부모님은 많은 불공을 들였다고 하셨다.
그 사연을 듣고 나니 그 절이 낯설지가 않고 친근감마저 들었다.
어릴 땐 가파른 남산골을 올라가는 길이 그리도 멀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약수터까지 거뜬히 걸어서 갔다 온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작은 폭포가 있는 덕에 다니기 좋도록 길을 잘 닦아 완만 산길이 되어 산책 삼아 자주 올라갔다 오곤 한다. 산을 오를 때면 우리 밭 근처에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던 곳이 있었다.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시켜 주던 간이 약수터가 있었는데 수질검사에서 물이 오염되었다는 결과가 나와 폐쇄시켜 이제는 어릴 적 마시던 그 다디단 약수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옛 추억 삼아 언니와 함께 올라가 보니 그 자리에 '백불원'이라는 도교종이 들어서 있었다. 그 자리는 내 어릴 적 우리 집 복숭아 밭이 있었다. 비포장 도로에 땅이 거칠어 조금만 잘못해도 경운기나 리어카가 수차례 미끄러져 내릴 만큼 가팔랐던 힘든 골짜기를, 복숭아 농사를 짓느라 사시사철 오르락내리락하며 우리 가족들이 무척이나 고생을 많이 했던 곳이다.
고생스러움 속에서도 좋은 추억도 많았다. 여름에는 등산객들이 잘 익은 복숭아를 자기 것 마냥 몰래 따 가지고 가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복숭아밭을 지켜야 했다.
여름방학 때면 복숭아밭 지킴이가 되어 매일같이 산을 올라야 했다.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복숭아밭 아래 수영하기 좋은 계곡이 곳곳에 있어 다이빙도 하고 가재도 잡으며 똑같은 목적으로 온 이웃밭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놀이에 빠져 놀다가 지쳐 밭으로 돌아오면 언제 따 가지고 갔는지 달고 씨알 좋은 복숭아는 다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진 복숭아 때문에 부모님께 혼날까 봐 마음 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어른들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보지도 않았는데 사라진 복숭아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하고.
그러다 겨울이 오면 복숭아밭에서 다음 해를 준비하기 위해 나무 전징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점심을 가져다 드리고 위해 또 산을 올라야 했다. 그 길목엔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여름에는 물이 많아 깊이를 알 수 없었기에 누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는 무서운 전설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어른들이 개구쟁이 아이들의 엉뚱한 행동을 막기 위한 비방책이었음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때 그 무서운 전설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연못 바로 앞에 상엿집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나이 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묘를 만들어 산소에 모셨는데 동네분들이 합심해서 어깨에 메고 돌아가신 분을 산소까지 모셔가는 긴 가마 같은 것이 상여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부분 상엿집을 엄청 무섭게 생각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일부러 무서운 얘기를 해 서로에게 겁을 주는 장난도 많이 쳤다. 그 당시에는 정말 무서웠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그 연못이 꽁꽁 얼어붙었다. 근처 가는 것조차 겁이 났던 연못이 얼어 있을 땐 재미난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산에 가다 말고 꼭 들러 꽁꽁 언 연못 위에서 미끄럼을 수없이 타고 놀았다.
그러다 시간이 한참 지난 걸 알고는 정신없이 산으로 숨차게 내달려 올라간다. 아버지는 기다리다 배고픔에 타박을 하신다. 그래도 즐겁다. 아버지의 성난혼냄도 미끄럼 타는 즐거움을 막지는 못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러했다. 힘듦이 전부라면 그 힘듦 속에 자연이 주는 계절을 벗 삼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던 시골살이의 특권이자 유일한 사치였다.
사람들이 좋은 지세를 말할 때 배산임수(背山臨水)란 말을 많이 한다.
옛날에 시골은 농사가 주 업이었기 때문에 집 가까이 물이 많이 있다는 것은 비옥한 땅이 많다는 뜻도 되었다. 그런 모든 조건이 잘 들어맞는 곳이 내 고향 청도다.
강과 산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 전국에서 카페가 가장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쁜 곳이 되어있다. 남편이 퇴직을 하고 시골 살이를 시작하면서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이었나 싶은 생각에 애정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여간다.
예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나에게도 이런 소중한 곳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함까지 들었다.
해넘이가 시작된 어슴푸레한 저녁나절, 선선한 시골 바람에 가녀린 머리카락 어설피 날리면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자 테라스로 나간다. 이른 저녁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우리 아이들과 짧은 안부 전화로 나눌 때면 도시녀로 표준말만 사용하던 내가 언제부턴가 어릴 때 쓰던 찰진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누가 듣든 말든 상관 않은 채 익숙한 사투리로 거침없이 낮은 담장 위를 휙휙 내던지며 가족들과 아쉬움이 한껏 묻은 수다를 한참이나 떨곤 한다. 시골이라 시끄럽게 떠들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저 가족과 이웃과 나누는 정겨운 소리일 뿐이다.
시골의 노을은 참 아름답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갖가지 옷을 바꿔 입는다.
온화한 엄마의 품이었다가, 어느 날은 예민한 아가씨 같은 마음으로 , 어떤 땐 너무 화가 나 서슬이 시퍼런 폭풍우 전야처럼, 또 하루는 귀여운 동물로, 때론 고요한 바다를 항해하는 유랑자처럼 시시각각 바뀌는 노을은 나의 깊은 감성을 요동치게 하며 방향을 잃은 시선을 하염없이 잡아두곤 한다. 나는 자연에 도취되어 방랑자를 자처한다. 시골의 저녁은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로 매료시켜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빛바랜 우리 집 데크 위에는 묵직한 빨간색 파라솔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곳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청도읍성이 한눈에 보인다. 그래서 제일 애정하는 곳이다. 낮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주위를 에워싸고 밤에는 읍성을 장식한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불빛으로 시선을 머물게 한다. 운 좋은 날이면 읍성 근처 한옥카페에서 오페라 가수들의 멋진 클래식 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오직 나만 누리는 사치인양 만끽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