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서 배운 행복(1-3)

인성 좋은 아이 키우는 법

by 복사꽃향기

-두뇌에 좋은 놀이-


내가 결혼을 하고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그때부터 나는 평생의 걸쳐 이뤄내야 하는 장엄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소유물이 아닌 이 아이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써 올바른 사회인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내 인생 최대의 무거운 책임감을 스스로 지기로 했던 것이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 돌입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키우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 하는 깊은 고민을 안고 항상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첫째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의 두뇌와 좋은 품성을 지닐 수 있도록 좋은 태교 지침서를 교훈 삼아 체계적인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계획해 만들어 보기도 했다.

태교에 좋은 방법들이 수도 없이 알려주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로 심사숙고한 다음 적용해 보았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잘해 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위한 성장과정에 소솔 하지 않도록 항상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내 전부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 오르지 않았을까 하고 믿어본다.

첫 번째로 했던 것은 그 시기에 니들포인트라는 스킬자수가 유행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이었기에 아이두뇌에 좋을 거라는 생각에 해본 적도 없으면서 제일 큰 사이즈로 준비해서 한 땀 한 땀 수를 놓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했던 것은 클래식음악은 무조건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해 못 하는 클래식 음악을 나름 심취해 듣기도 했다. 감상했다기보다는 아마도 그냥 틀어놓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아름다운 감성이 깊이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리고 온화한 품성을 지니길 바라면서 부지런히 들었다.

항상 행복한 생각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켰고 힘든 날들 속에서도 애써 미소를 머금고 다녔다.

길가에 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다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드디어 내가 소원했던 이쁜 첫째 딸이 태어났다.

새하얀 피부에 포도알같이 짙고 까만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자라면서 성격도 차분하고 행동에 있어서도 의젓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엄마와 딸의 행복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해 뒤에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남동생이 태어났다.

아기자체를 너무 예뻐해 그 귀여움에 자리도 뜨지 못하고 이것저것 챙겨주며 살뜰히 돌보는 것이었다. 어린 보모가 따로 없었다.


아이들이 5살, 3살이 되었을 때 글자를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글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겨 읽으려고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글을 알게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생각해 낸 방법은 한글이나 숫자공부를 놀이처럼 하는 것이었다.

항상 우유를 먹이고 있었기에 따로 두꺼운 종이를 사지 않고 종이우유통을 이용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면을 색종이로 색깔별로 예쁘게 붙인 다음 그 위에 가, 나, 다, 라, 글자를 적어 여러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해 주사위처럼 던져서 나오는 글자를 먼저 알려주고 맞추는 방식으로 하나씩 익혀 나가도록 했다. 아이들의 뇌는 정말 스펀지 같았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흡수했다.

아이들은 던지는 재미에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빠져 눈만 마주쳤다 하면 글자 주사위를 던졌다. 그러면서 글자를 한 자 한 자 알아가자 재미를 붙였다.


글자를 조금씩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눈에 보이는 글자는 모조리 다 읽으려고 했고 모르면 계속 물었다.

아이들의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언제나 기다려 주었다.

나는 그 오랜 기다림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글자를 알게 되자 좀 더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일 쉬운 학습지부터 시작해 보았다.


제일 먼저 한글과 산수를 신청했다.

한글은 조사인 을,를, 의 발음이 잘 안돼 매일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호기심이 생겨도 짧기 때문에 모르고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우리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물었다.

그 마음이 한없이 기특하기만 했다.

내가 자식에게 올인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책임을 맡게 되면 끝까지 해내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그 시간의 내 삶의 우선순위는 아이들이었고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도 아이들이 물어오면 열일 제쳐두고 오롯이 아이한테만 집중했다.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을 위해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하며 살았다.


그 과정들 속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숫자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좀 일찍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가르쳐 주었다.

숫자라는 계념에 자신감이 있다 보니 열정이 생겨 무엇이든 계산을 했다. 확실히 계산이 빨랐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거스럼돈도 에누리 없이 잔돈을 거슬러 온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주인의 틀림 금액을 바로잡아 가져오기도 했다.

정확도가 높다 보니 아이도 점점 숫자에 자신감이 붙었고 또 좋아했다.

그래서 산수공부를 더 많이 시켰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은 습득도 빠르고 또 이해도 빨라 더 어려운 부분도 충분히 소화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말 그랬다.

가르쳐주면 주는 데로 흡수했고 나도 신이 나서 두뇌에 좋은 놀잇감을 더 찾기 시작했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연구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그래도 아이가 지치고 힘들어하면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자 다짐했었다.

자연스레 생활에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 내 교육의 포인트였다.

그래서 나의 일상은 항상 아이들의 눈높이에 두고 시작과 끝을 맞추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는 항상 두 아이게게 모두 적용을 시켜보고 잘 따라 하고 호기심을 보이면 가르쳐 준다. 싫어하면 시키지 않는다.


딸과 아들은 많이 달랐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인정해 주었다.

첫 번째 놀이로 찾은 것이 '오목'이었다. 아들은 호기심이 많고 머리 회전이 빨랐다.

한번 가르쳐 주면 기술을 빨리 익히는 편이었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성격이 아이의 능력에 박차를 가했다.

처음엔 내가 계속 이겼지만 얼마가지 않아 반복연습과 승부욕에 불이 붙은 아들에게 지고 말았다.

지는 것을 용납 못해 엄마를 꼭 이기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한번 지기 시작하자 좀처럼 이기기가 어려웠다. 집요한 아들 탓에 내 생활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후 나는 아들을 이기기 위해, 아들은 엄마를 이기기 위해 매일같이 오목을 해야만 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오르자 두 번째 놀이로 '장기'를 가르쳤다.

기본적인 길만 아는 정도라 아는 만큼만 가르쳐 주었다. 하다 보니 나도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는 게 약이 올라 엄마를 이기겠다고 하루 종일 장기만 둔적도 있었다.

어떤 놀이를 해도 내가 먼저 아이에게 그만하자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호기심이 다 해소될 때까지 맞춰준다.

내가 자랄 때 궁금증을 참지 못해 알 때까지 집착했던 기억으로 남아 아이들 마음도 그러할 것이란 생각에 그 호기심을 해소해 주고 싶었다. 아이가 놀이를 같이 하자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준다.

그 시기만의 충족감을 채워야 하기에......

또 몇 달을 매일 같이 장기를 두다 보니 실력이 쑥쑥 자랐다.

어른들과도 대적할 실력이 되었다.

장기를 좀 둔다는 큰 아빠에게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과가 나쁘지 않아 더 열정을 불태웠다.


장기 또한 어느 정도의 자리를 잡은 것 같아 세 번째 놀이에 돌입했다. '윷놀이'였다.

윷놀이는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게임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놀이이다 보니 빠른 시간 내에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 순발력의 놀이이다. 판단력이 좋아야 한다.

아들은 두뇌놀이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지기 싫어하는 성향이었기에 나는 절대 져주지 않는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놀아준다. 또 매일 밤늦게 까지 윷놀이를 해줘야만 했다.


그렇게 한 가지씩 숙달될 즈음이면 나는 또 새로운 놀이를 연구하고 고심하는 게 행복한 숙제였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아이들과 함께 한 놀이시간이 한 번도 지겹거나 괴로운 적이 없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저 신기하고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행동하나 싶은 호기심에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곤 했었다.

지치지 않는 아이의 열정에 맞춰주면서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정신으로 올바르고 행복한 삶을 살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더 많은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눈높이에 맞춰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교육보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영어, 한문공부도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전담하고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힘들거나 싫증 나지 않게 그리고 배움이 즐거울 수 있게 아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같이 의논해 물어보고 시켰다. 학습의 양을 줄이거나 늘리는 방법으로 아이의 선택에 맡겨 조절했다.

또 어떤 과목에서 싫증을 내거나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일단 거기서 중단하고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다시 하게끔 기다려 주었다. 학교 들어가기 전이라 억지로 시킨 학습은 역효과가 날 수 있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배움이 곧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게 내 목적이었다.

항상 선택은 우리 아이들의 몫이다.


나는 그저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부딪혀 살아갈 때 필요에 의해 도와주는 멘토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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