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마지막 일주일

2. 엄마와의 시간 (2020~2022.06)

by 복사꽃향기

새로 지은 예쁜 집에서 두 분이 재미있게 사시길 바랐는데 아버지는 그 집에서 3개월을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90대 초반이었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최고령이었다. 그 많던 친구분들이 한분 두 분 세상을 떠나시고 한 명의 친구조차도 없어 외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면역도 다 떨어져 갖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삶의 존재마저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외로움이 가장 큰 병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는 참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자식이 아무리 사랑을 표현하고 애정을 보여 드려도 마음에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신이 가는 날을 어느 정도 예측한다는 말을 들었다. 새집을 짓고 나서 가족들이 얼굴 보는 날들이 많아졌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이발을 좀 해달라고 하셨다. 머리에 피부병이 있어 늘 가렵다며 약을 바르고 하다 보니 딱지도 많이 생겼고 그래서 머리 만지는걸 굉장히 예민해하셨다. 모습이 추하다며 이발을 해야 하는데 남에게 보이기도 싫다며 좀 잘라달라고 하셨다. 아버지께 모처럼 효도한다는 마음에 얼른 이발도구세트를 사 와서 의자에 앉으시라고 하고는 목에는 머리카락 들어가지 말라고 과일상자를 사면 포장해 주는 금색 보자기로 목에 두르고 어설픈 가위질을 시작했다.


몇 가닥 남지 않고 두상에 상처가 있는 괴팍한 성격의 아버지 머리를 자르려고 하니 선뜻 손이 나아가질 않았다. 실수라도 해서 아프다고 신경질을 낼까 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요리조리 맞혀가며 형태를 잡았다.

아버지가 손거울로 요리저리 머리상태를 살펴보시고는 마음에 든다며 잘 잘랐다고 하셨다. 언니와 나는 서로 ‘웬일이지?’ 하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면서 그날은 굉장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다. 아니라면 좋은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언니들도 안심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항상 화만 냈던 아버지 모습이 아닌 “그동안 고생했네.”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시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어주시고는 그에 맞는 따뜻한 말도 해주셨다. 엄마에게도 아버지 당신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자 아무 반응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 그날은 좀 이상했다. ‘이런 아버지가 아닌데. 이런 말을 해줄 사람이 아닌데.’ 우리가 오히려 아버지의 모습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에 너무 다행이라며 엄마에 대한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 집에 올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지낸 며칠 뒤 새벽에 아버지가 의식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3일 정도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계시다 가족들 모두의 마지막 인사를 듣고는 돌아가셨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 지나 모든 일이 마무리가 되었을 즈음 오지 않을 것 같은 엄마만의 시간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엄마가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다. 워낙 아버지가 꼿꼿하시고 총기도 좋으시고 건강상으로는 아버지가 더 건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자 그동안 받아온 마음의 상처에 엄마가 버텨낼 수 있을까 염려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이었던 것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지독한 성격 탓으로만 여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본인은 어쩔 수 없는 굴레에 갇혀 살았지만 착하디 착한 자식들을 너무 힘들게만 하고 가신 아버지에게 남아 있던 모든 원망을 깊디깊은 울분으로 토로하셨다. 억울한 마음 어떻게 다 씻어낼 수 있을까만은 그 대상이 사라지고 나니 더 원통하다는 생각이 드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나는 엄마한테 자주 갔다. 엄마는 아이처럼 온몸으로 반가워해 주셨다. 언니들은 엄마에게 든든한 울타리이자 의논할 대상들이었고 나는 엄마와 마음을 나누는 대화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의 상처와 남아있는 응어리를 걷어낼 수 있게 이야기를 들어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억울함을 자꾸 끄집어 내게 했다. 그래야만 엄마의 마음이 좀 비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비워진 그 자리에 자식들의 사랑을 가득 채워 넣으리라 다짐했다.

얘기하는 동안 엄마는 무척 힘들어했다. 엄마의 인생 전체가 흑빛이었으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억울함을 발산하고 싶은 부분도 있는 듯했다. 아마 한동안은 혼동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걸 내가 다 받아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억울함의 수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내 아버지지만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마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너무나 불쌍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이제부터는 꽃길만 걷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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