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마와의 시간 (2020~2022.06)
엄마는 매일 하는 루틴이 있다.
오후 1시쯤에 옆 노인경로당에 가서 오후 5시쯤에 어른 유모차를 끌고 득의양양하게 퇴근을 하신다. 경로당에서 하는 일은 동네어르신들이 모여 10원짜리 고스톱을 치신다. 10원이라도 잃으면 예민해진 어르신들이 싸움도 곧잘 하신다. 전재산을 다 잃은 것처럼 큰소리치며 싸운다. 살벌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쏟는지, 없던 힘이 그때만은 장사도 그런 장사가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온 엄마는 주책이라며 적은 돈에 감정고문한 친구들을 철없다며 넋두리하신다.
우리 엄마가 기억력이 좋은 이유가 다 있었다. 그동안 꼼꼼히 기록해 둔 고스톱기록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잃은 돈, 딴 돈을 매일 기록해 놓았다. 고스톱 치고부터 오늘까지 얼마를 땄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엄마의 너무 좋은 점은 항상 무엇이든 기록을 잘한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엄마의 기록장에는 모든 것이 적혀있어 가끔 훔쳐 읽다 보면 너무 재밌다. 중요한 메모옆에 순간의 감정까지 적혀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그동안에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얘기해 주셨다. 나 역시 힘든 내 삶을 살다 보니 부모님의 일들은 언니들이 챙기겠거니 하며 조금은 무심하게 살아온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일어난 일들을 잘 모르고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엄마가 알리지 않은 것도 많이 있었겠지만 큰일이 아니면 애써 챙겨 살피지 않은 내 무심함도 컸을 것이다.
엄마는 근처에 회관이 있어 날마다 어르신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시간 날 때마다 간간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은 너무 웃겨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엄마는 힘들었던 일들조차도 즐겁게 풀어내는 재주꾼이었다.
하루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너무 아파서 발을 동동 굴렀단다.
“엄마, 배가 왜 아팠는데? 그래서 병원에는 갔었나?”하고 물었다.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배가 이유 없이 너무 아픈데 왜 아픈지 원인도 모르겠고 뒤는 마려운데 화장실에 가도 소식도 없고 배는 터져 나갈 정도로 아팠다 아이가. 처음 겪는 일이라 도대체 왜 이런가 싶어 겁이 막나더라. 앉지도 서지도 못하겠고 참다 참다 할 수 없이 아버지가 119를 부르더라.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간호사한테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변비가 심한 것 같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스럽기도 하다가 배가 너무 아프니까 고마 눈에 비는 게 없더라. 제발 좀 살려달라고 애걸 복걸했다 아이가. 그런데 간호사들은 천연덕스럽게 괜찮다고만 하는데 어찌나 신경질이 나던지, 소리를 빽 질렀다. 저그들은 안 아프니까 저르는 갑다 싶어서... 병원에 도착했는데도 빨리 해결은 안 해주고 시간만 가고 있길래 또 소리 질렀다 아이가. 너무 아파서 창피고 뭐시고 간에 사람 살고 봐야겠다 싶더라. 빨리 안 온다고 씩씩거리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한 간호사가 오더니 냅다 엉덩이에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후벼 파더만. 그러고 나니까 배가 안 아파 그제야 살았구나 싶더라”
그 말에 엄마랑 둘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엄마도 그날 일이 기가 찬지 눈물 콧물 흘려가며 박장대소를 했다.
“아이고! 간호사도 할 짓이 아니더라 그리고 대단하더라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넣대.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망신 시러버 죽겠더라. 그래서 나만 그런가 싶어 간호사한테 살짹이 물어봤다. "내처럼 이렇게 오는 사람도 있능교?" 했더니 간호사가 “많습니다. 어르신. 연세가 많으시면 여러 가지 기능들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일로 병원에 많이 오십니다. 집에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면서 음식을 부드럽게 해서 드시고 채소를 많이 먹으세요."라고 일러주더라. 그 때 챙피스러웠던거 생각하면 다시는 안 가고 싶다. 그래서 내 요즘 혹시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최대한 부드럽게 먹으려고 음식에 신경 마이쓴다 아이가.”
그때의 상황을 손짓 발짓해 가면서 표현하는데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엄마, 진짜 너무 웃프다.”라고 말해놓고 또 한바탕 웃었다. 엄마가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열심히 추임새까지 넣어주며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준다. 엄마는 나와 얘기할 때 그렇게 잘 웃으신다. 항상 엄마를 웃게 해 드리고 싶다. 가능하면 슬픈 이야기도 즐거운 이야기로 승화시켜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표현력과 몰입도가 너무 좋은 우리 엄마는 금방 분위기에 빠져든다. 그래서 단순한 이야기도 너무 맛깔스럽게 하는 것 같다.
엄마는 개그우먼을 했어도 참 잘 했을 것 같다. 그렇게 엄마와 둘이서 수다를 떨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었다. 가끔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면 웃음부터 먼저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