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신세대

2. 엄마와의 시간 (2020~2022.06)

by 복사꽃향기


엄마는 사진 찍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딜 가든 무조건 사진부터 찍자고 하셨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건만 항상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잡고 싶은 마음도 컸으리라. 엄마는 오로지 아름다운 것만을 바라보며 살고자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지만 현실은 꽃처럼 아름답지 않았기에 잠시 꽃 속으로 숨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엄마는 꽃과 하나가 되어 잠시 찰나의 꽃 여인이 되어본다. 그리고 꽃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추억 속으로 남긴다. 아름답다. 꽃 속의 여인도 엄마라는 이름도.


나는 그런 순간 순간에 몰입하고 즐기는 엄마의 순수한 모습이 참으로 좋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사랑스러움이 있다. 오롯이 자신의 감성에 맡긴 채 표현되는 인간 그 본연의 몸짓에. 세월을 안고 나이를 벗 삼아도 소녀 같은 여린 감성과 청순함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엄마는 본인만의 특별함이 있다. 어른스러워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자식들 앞이라고 무게도 잡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며 행동한다. 엄마의 그런 감성에 우리도 많이 닮아 있다.


엄마는 평상시 찍어놓은 사진들을 수시로 꺼내 감상하곤 하셨다. 오래 전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보낸 그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왜 그렇게 자주 사진을 꺼내 보느냐고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다. 그저 엄마의 일상이려니 생각했다. 엄마는 사진 속의 가족들이나 친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추억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자주 우리들에게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여기가 어디며 누구랑 함께 여행했는지 어떤 상황이라는 것까지 한 장 한 장에 담긴 추억과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정성스럽게 얘기를 해주셨다.


집 앞마당에는 계절마다 엄마의 부지런한 손길 속에서 자라난 갖가지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순간을 남긴다. 아름답게 활짝 피어 한 장, 봉오리 맺어 한 장, 안 보던 꽃이라 한 장, 귀한 꽃이라 한 장, 색감이 좋아 한 장,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아날로그 방식으로 현상해 엄마에게 보내 드리곤 했다. 집에 들를 때마다 엄마는 한 번도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항상 들었던 내용들이었지만 행복해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처음 듣는 것처럼 귀 기울여 들었다.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으면 엄마는 더욱 몰입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순수한 모습이 너무나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매번 같은 얘기를 하면서도 그렇게 신이 나실까. 엄마가 알면서 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고 하는 것인지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사진을 바라보며 그 순간의 머물러 있는 엄마의 미소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걸로 된 것이다.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사진을 넘치도록 찍어 드렸다.




요즘은 사진도 폰으로 찍고 동영상도 볼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나이가 많은 분이라 통화만 가능한 폴더 폰을 사드렸었다. 하루는 가족행사가 있어 너무 재미있는 동영상을 찍게 되었다. 그 동영상에 엄마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의 모습으로 담겼다. 볼 때마다 너무 재미있어 우리 가족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그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여러 번 보여드리게 되었다.


그러다 문뜩 떠올랐다.


'혼자 계실 때 이 동영상을 즐겁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외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딸에게 "할머니께 동영상을 만들어 보여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하고 물었다. 화면이 커서 할머니가 보시기에 좋을 것이라며 태블릿 PC를 사서 보내주었다. 그 기능에 가족들과 함께 했던 재미난 영상들과 자주 보는 사진들을 모두 다 저장해 드리고 사용 방법도 간단하게 알려드렸다.

처음 사용에 조금 서툴러 여러 번 반복해 알려드렸다. 잊지 말고 매일 반복해서 한 번씩은 열어보라고 일러두었다.


그 후 엄마는 동영상 보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주저함도 없었다. 이웃지인들에게도 만나는 친구분들에게도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도 보여주며 자랑도 하셨단다. 며칠 뒤 집에 갔더니 태블릿을 척척 열고 닫는 신세대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신문물을 영접한 엄마가 너무 좋아하셔서 집에 갈 때마다 재미있는 사진들을 가족들에게 보내달라고 해서 태블릿에 모두 저장해 드렸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언제든 편안하게 보실 수 있도록. 우리가 다시 엄마를 뵈러 갈 때까지 저장해 둔 사진들을 닳도록 보고 또 보고 하셨다.

그렇게 저장한 사진이 늘어갈수록 엄마의 행복한 시간도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사람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나를 더 많이 생각해 주는 자식에게 애정이 더 가기 마련이다. 우리 엄마는 참 현명하다. 다 똑같이 귀하다 하시면서도 엄마를 생각해 주는 그 자식만이 알 수 있는 표현을 해주셨다. 참 많이 나에게 표현을 해주셨다. 나는 안다. 그리곤 생각날 때마다 외할머니에게 애정표현하는 우리 딸에게 ‘이쁜 손녀’라는 호칭을 꼭 붙여 얘기를 하곤 하셨다. 표현하는 하나하나에도 항상 가족들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묻어났다. 엄마도 은근히 자랑을 많이 하시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한테는 "괜찮다. 안 해도 된다." 하시고서는 그렇게 자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해준 것 없는 자식들이 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못해주는 것이 안타깝고 그저 자식들이 무탈하게 자라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셨다. 어떤 바람도 없었기에 더 많은 걸 해드리고 싶게 만들었다. 그렇게 소소한 것 하나씩을 해드릴 때마다 내 마음의 짐은 하나씩 내려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고맙게 생각하는 엄마를 보며 그동안 괜찮다는 말만 믿고 행동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마음의 짐이 되어 틈만 나면 '뭘 해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야 어른이 조금 되어가나 보다 싶다. 고집스러운 엄마가 아니라 바람이 없기에 더 챙겨 돌봐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엄마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가끔씩 얼굴 보는 것이 바람의 전부였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도 넉넉한 품성으로 이렇게 자식을 성장시켜 주고 있었다. 세상에는 자식보다 못한 부모도 많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도 더 현명하고 지혜롭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 집에서 엄마만큼 두루 갖춘 자식은 없는 것 같다. 단연코 여러모로 엄마가 최고다.


엄마에게 젊은 시절의 시간들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행복이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의 그 아름답던 시간도 촌음같이 한 달음에 지나가 버렸다.

아무 날 아무렇게 찍었던 미소 띤 그 사진 한 장은 인생사진이 되어 엄마가 잠들어 계신 곳에 함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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