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장례지도사님

by 복사꽃향기

엄마가 돌아가시자 지관분께 날을 받아 3일장을 치렀다.

성격이 유 한 엄마를 배웅하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모든 과정들이 물 흐르듯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발인하던 날 아침 바람이 폭풍처럼 거세게 불었다. 그래도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와 평생을 머물렀던 보금자리를 뒤돌아보며 마지막으로 가족들로부터 떠나가는 의식을 치렀다.


상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 주관하시는 분이 무척 애를 먹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상을 차렸고 가족들은 엄마가 가시는 길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노잣돈을 올리며 아쉬움을 가득 담아 정성껏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가족들의 인사가 끝나자 주관하고 계시던 지도사분이 장손을 나오라고 하더니 노잣돈을 전부 거두어 반으로 나누어 할머니가 주시는 마지막 용돈이라며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늦게 인사하게 된 친지분들이 올린 노잣돈까지 거두어 손녀들에게 또 쥐어주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런 장례지도사를 처음 보았다. 그동안 수차례 장례를 치렀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따지는 장례지도사만 있었지 가족들에게 위로해 주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기에 우리 가족들은 그 인품에 감동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그때 받은 할머니의 마지막 용돈을 언제나 아낌없는 사랑을 주신 할머니를 추억하며 쓰고 싶지 않다며 코팅까지 해서 잘 보관하고 있다.

그날 그 장례지도사분의 작은 행동이 우리 가족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엄마를 보내야 하는 큰 슬픔에 가득 찬 우리 가족들에게 진심을 다해 주었고 발인을 마치고 다음 장소인 화장터에 도착해 다시 빈소를 정성껏 차려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아들과 사위들의 절이 끝나자 며느리 둘을 나오라고 했다. 그리곤 큰 절을 4번을 하라고 했다. 이어 딸들도 4번의 절을 했다. 지금껏 항상 절을 3번 하는 걸로 알고 있던 우리 가족들은 너무 의아하기만 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키는 대로 했다. 절을 다 마친 그제야 우리 가족들에게 이해를 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맏며느리는 절에 가서 108배를 좀 해라" 하는 것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마치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문제가 많은 맏며느리였다. 엄마가 편찮으신 후에도 집에 한번 온 적도, 관심도 없었고 남처럼 행동을 했기에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그동안 감추고 꾹꾹 눌러왔던 섭섭한 마음을 그때서야 깊이 토해 내시며 통곡을 하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치 엄마가 말하는 것 같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도사분이 우리 집 사정을 어찌 알고 저런 말을 할까 싶을 정도였다.

정말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분이었다.


한번 더 그런 말을 했다.

손자 셋이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된 장례지도사분이 장손에게 “엄마는 마음을 좀 다스려야 될 것 같다” 고 또 말을 한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우리 가족들은 지도사분이 보통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항상 너그럽게 며느리를 대하며 이해해 주었던 엄마가 '너무도 섭섭한 마음에 자꾸만 마음을 전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들은 너무 따뜻한 장례지도사 분을 만나 엄마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었고 덕분에 마음도 편안했다. 모든 과정들 또한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평화로운 시간들이었다. 언니는 실감이 안 난다며 “엄마 돌아가신 게 맞지?”하며 내게 여러 번 되묻곤 했다. 우리 가족들은 그렇게 엄마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지만 장례지도사분에 대한 감사함이 잊히지 않아 늘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간호일을 하다 아내분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신기했다. 그 아내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놀랍기 그지없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어떤 만남으로 이어지니 언제 어디서나 항상 좋은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또 한 번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진심이었다면 언젠가는 그 보답을 받게 되는 것 같았다. 보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보니 그렇더라.


"이렇게 또 삶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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