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먼 사이도 그렇다고 평소 전화로 인사를 나누며 지낼 정도의 사이도 아닌 얼굴만 어느 정도로 알고 지낸 한 지인한테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딸 문제로 나에게 조언을 좀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림 전시회를 하면서 몇 번 만난 사이였기에 서로 개인사는 잘 몰랐다.
그리고 고민이 크게 있을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사 남편에 부부사이도 좋았고, (본인이 그렇다고 얘기를 했기에) 아들하나 딸하나에 소위 수준 있는 집에 속했다. 전시회 준비로 가끔 만나면 본인 자랑을 많이 했다. 본인은 교회를 다니며 봉사활동도 하고 그림수업 하는 강사였기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듯 말하는 그 지인이 나를 한 두 번 만나면서 믿을 사람으로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나이가 같아서 편안하게 생각했는지 잊을만하면 전화 와서 차 한잔 하자고 자주 제의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지인에게 특별한 매력을 못 느껴 가까이 지내지 않고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정도였다. 그런 사이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을까?’ 하며 약속장소로 갔다.
식사를 마치고 조용한 곳에서 차를 한잔하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고민은 29살 된 딸아이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부모에게 원망하는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부모와의 사이가 조금씩 안 좋았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가볍게 넘겨 버렸는데 고등학교를 가더니 부모와 상의도 없이 맘대로 자퇴서를 내 다니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단다.
평상시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 혼을 많이 내 그런지 어느 날부터 무엇이든지 자기 맘대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점점 정도가 심해져 부모말도 안 통하는 지경까지 되어 답답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전문적인 상담가는 아니지만 본인으로써는 그나마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대상쯤은 되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아무에게나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일단 들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미숙한 소견이나마 답을 해주어야 의무감이 생겨 버렸고 그리고 상대방은 내 생각을 꼭 좀 얘기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딸이 자퇴서를 냈을 때 “왜 그렇게 했느냐”라고 먼저 물어보았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이 엄마왈 “그걸 물어봤어야 했느냐”라고 내게 오히려 반문한다. 맘대로 자퇴서를 낸 것에만 속이 상해서 물어봤어야 하는 순서를 무시하고 무작정 애만 다그쳤다고 한다.
그것도 엄마, 아빠가 쌍으로 한패 먹고는 돌아가면서 말이다.
“엄마, 아빠는 네 나이 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착실한 학생으로 살았는데, 너는 왜 이모양이야!” 하며 이해할 수 없다며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내 앞에서 본인의 속상함만 토로했다.
'순간 무슨 이런 엄마가 다 있을까?' 순간 욕을 한 사발 하고 싶었지만 이 기본도 안 되는 엄마에게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생각을 삼켰다. 분명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딸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딸과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학교 가기 싫다고 전학을 시켜달라는 말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는데 친구들의 놀림을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로 생각하고 무시해 버렸단다.
그 이후부터 아이는 엉뚱한 행동을 했고 그때마다 핀잔을 주며 스스로 알아서 잘 해내 주지 못하는 딸만 나무라고 있었다. 내게 말하는 동안 한 번도 딸아이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질 않았다.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하소연 하러 온 사람 같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마음이 너무 무겁고 답답했다. 이렇게 까지 자신의 아이를 방치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 엄마는 내게 무엇을 듣고 싶은 온 것일까. 힘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서 온 것일까
갑자기 그 딸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자신의 마음을 좀 알아달라고 말로 몸으로 소리치고 있는데 이 엄마라는 사람은 늪에 빠져있는 딸의 상태를 전혀 못 느끼니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하나 내 마음의 고민만 커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알던 사람이 이 정도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나' 싶어 너무 실망스러웠다.
부모라는 큰 무게를 짊어지고 살얼음을 걷듯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부모로서의 자질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고 오로지 자신의 힘듦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였다.
그 와중에도 계속 자신은 부모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며 살았고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 없이 해줬는데 딸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그 딸에게로 가고 있었다.
딸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마지막으로 기댈 피난처인 부모마저 외면을 해 버렸으니 상처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을 일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아들을 딸 앞에서 보란 듯이 편애하며 비교를 했다고 한다. 최악이었다. 그리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더 상처를 내고 있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딸은 점점 수위가 높아졌고 결국 또 큰 사고를 쳤다. 부모 몰래 신용카드를 훔쳐 마음대로 물건사제 기를 했음에도 아파트 관리자분한테서 매일같이 문 앞에 택배가 쌓여있다고 경고차원에서 연락이 와서야 딸의 행동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찾아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 의견을 물은 것이다.
참 기가 막일 노릇이었다. 이 엄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도통 딸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 같았다. 무관심해도 이렇게 까지 무관심할 수가 있나?
그 대화도중에도 그 엄마는 한 번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며 말하고는 모질게 말해버렸다.
"엄마가 맞냐고! 기본도 안된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딸이 보이기는 하냐고!"
부모의 행동과 생각이 딸에게 고통을 더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딸을 데리고 가서 “정신과 상담을 좀 받는 게 좋겠다”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엄마는 노력도 해보지도 않고 딸이 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 자리에서 그것도 못하겠다고 못을 박는다. 딸 핑계를 댔지만 내가 보기엔 주위를 의식한 처사였다. 그런 상황에 또 딸은 엄마바라기란다. 엄마한테 그렇게 혼이 나고 대화도 잘 안 하는 사이임에도 딸은 불안해서 엄마 곁에만 붙어있으려고 한단다.
나와 만나고 있는 시간에도 “엄마 언제 오냐” 며 계속 전화를 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노력해 볼 테니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했다.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이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말하자 노트에 필기까지 하는 열성을 보였다.
제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온 몸의 에너지를 다 써 가면 말해주었다.
노력해서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무조건 딸 얘기를 다 들어주라고 했다. 그냥 다 들어주기만 하라고. 시간이 걸려도 엄마가 본인 편이란 걸 느낄 때까지.... 계속 들어주기만 하라고
그래야만 딸과의 사이가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으며 딸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될 거라고 했다.
딸이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도록 계속 들어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딸을 꼭 설득해 상담도 병행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도 너무 안타까움에 “제발 정신 좀 차리라”라고 윽박질러 버렸다.
자식은 부모가 키우는 대로 큰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부모인 자신부터 돌아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요구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먼저 살아온 선배로써 카운슬러이자 협력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어떤 환경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어느 산부인과에 한날한시에 남자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의 부모는 인품과 교양이 넘치는 부잣집 아이였고, 또 한 아이의 부모는 배운 것이라고는 없는 무식하고 폭력적이며 사기기질이 다분히 있는 집의 아이였다. 그런 두 아이가 간호사의 실수로 뒤바뀐 삶을 살게 되었다. 두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부모를 닮은 곳이 전혀 없어 그때서야 뒤바뀐 사실을 알고 각각 제 부모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두 아이는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해 결국 키워준 부모의 자식으로 살게 되었다.
두 아이는 키워준 부모의 영향을 받아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부잣집으로 갔음에도 폭력적이었으며 사기를 치고 다녀 부모가 감당할 수 없었고 항상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그 가정은 늘 불화로 가득했다.
교육을 많이 받고 자란 부잣집 아들은 무식한 부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사고만 치고 다녀 이 부모들 또한 감당하지 못해 결국 두 집 부모들은 다시 만나 의논한 끝에 본래대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는 키워주는 사람의 영향을 80% 이상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이는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할머니가 키우면 할머니의 행동, 말투, 모습을 닮게 되고
엄마가 키우면 엄마를 닮게 되고 아빠가 키우면 아빠를 닮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모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
아이를 탓하기 전에 내가 자식에게 버티목이 되어줄 수 있는 부모인가를 먼저 점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