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문고 근처에서 오래 살았다.
서점의 이름은 동네에 흐르던 강 이름을 그대로 썼다.
이 책방에 꽤 신세를 졌다. 십 년 가까이 무시로 책 구경을 했기 때문이다. 퇴근하다가 불쑥, 마트에 오가며, 휴일에 낮잠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채로 슬리퍼 신고 드나들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서 책 읽고 놀다(?) 오라고 많이 내보내기도 했다. 서점으로 아이들을 찾으러 가며 마음에 고이는 기꺼움도 소소한 기쁨이었다.
H문고는 지하 1층에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가면 왼쪽에는 문구, 오른쪽에는 아동서가 펼쳐졌다. 아동 코너에는 긴 탁자와 나무 의자를 갖춰놓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놓았고, 서점 안쪽으로는 인문서적과 사회과학서도 제법 갖추고 있었다.
계산대 근처의 중앙에는 빨간색 S자형 서가가 있었다. 잔잔한 물결이 흐르듯 책을 구경할 수 있는 예쁜 서가였다. 책을 사면 책값의 10% 할인 대신 300원, 500원, 1000원, 3000원짜리 쿠폰을 줬는데 이걸 모아 책값에 보태면 참 뿌듯했었다. 빨간색 3000원짜리 쿠폰은 특히 더.
책방이 생기기 전 그 자리에는 슈퍼가 있었다. 마트의 폐점을 알고 이 자리에 뭐가 생길까 했는데 뜻밖에도 서점이 생겼다. 제법 넓은 매장에 수만 권의 책을 진열하고 있어 그곳에서 스테디셀러, 베스트셀러도 보고 특히 새 책 구경을 즐겼다.
시간이 넉넉할 때는 서가마다 주제를 정하고 테마별 진열을 한 곳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게 되었을 때 H문고를 두고 가는 것이 제일 아쉬웠다.
그런데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대형 서점 아니고는 동네의 중형서점은 멸종되어 간다더니 온라인 서점의 당일 배송과 근처 대형 서점의 위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도 늦게 알게 되었다. 이제 그 책방은 영영 다시 갈 수 없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참 서운하다!
J서적이 문을 닫은 뒤에도 추억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 그 근처에 가면 여기였는데 ‘서점이 있던 자리’하고 생각하고는 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스물몇 살의 나도 그 앞에서 약속을 했었다. 1907년에 문을 열었다는 그 오래된 책방 앞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은 잊고 살지만 낮고 넓은 계단이며, 4층 아니면 5층에 있던 문학 층을 오래오래 서성이던 일, 이 책을 살까 말까 하던 망설임, 아쉬움 간신히 몇 권을 사고 나면 김홍도의 서당 그림이 훈장처럼 새겨진 책 표지를 싸주던 일. 사고 싶은 책을 맘껏 살 만큼은 돈을 벌어야지 다짐을 하고는 정작 책방 뒷골목에서 책값보다 많은 술값을 쓰기도 했었다.
그 뒤로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말고 내려 들어섰던 책방들도 생각난다.
지금 사는 이곳에도 고장 이름 그대로를 쓰는 동네 빵집 같은 책방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팟빵이 맛있습니다. 갓 구운 애플파이 있습니다.
이런 알림판처럼
오늘 나온 소설이 맛있습니다.
시가 따끈합니다.
고소한 그림책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책은 가을밤 10시 30분에 읽는 산문입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기적! 이벤트도 기다려 주세요.
아무래도 좋다! 우리 동네에 책방이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