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들의 도서관

by 차은숙

동해 바다 어느 섬에 ‘신선들의 도서관’이 있다면 그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


오래 전 그런 도서관을 상상한 사람이 있다. 홍길주(1786~1841)라는 사람이다. 그는 풍산 홍씨로 홍인모와 영수합 서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학문과 문학을 즐기는 집안으로 큰형인 연천 홍석주와 동생 홍현주가 모두 문집을 갖고 있고, 가족들끼리 주고받은 작품집도 있다. 홍길주는 기발한 착상과 다양한 기법의 산문을 썼으며 기발한 소재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연암 박지원 이후 가장 뛰어난 문장가로 평가 받는다.


이제, 홍석주가 상상했던 신선들의 도서관을 구경해보자.


동해 바다 한가운데 신선들의 도서관이 있다. 고금의 도서를 모두 소장하고 다섯 등급으로 구별하여, 가장 좋은 책은 붉은 비단에 글을 써서 다섯 가지 무늬의 비단으로 표지를 입히고, 옥으로 다듬어 포갑을 만들고 산호로 서첨을 꾸몄다. 다음 좋은 책은 자줏빛 비단으로 표지를 입히고..... 또 다음 책은 흰 비단에 글을 써서 자줏빛 노을 무늬 비단으로 표지를 입히고.....

<<한국산문선 9>> <신선들의 도서관> / 홍길주 외 / 민음사


이렇게 한 권 한 권 아름답고 귀하게 만들어진 책들이 있는 이 도서관의 서고는 깊숙하고 꼭꼭 잠겨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고 또 들어간다고 해도 맘대로 책을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신선들이 사는 도서관이라니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언제나 열려 있는 현대의 도서관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도대체 이런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어떤 책일까?


어떤 사람이 어쩌다 한 번 보기는 했는데 맨 아랫 등급의 책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백, 한유 의 작품이라는 것. 그들은 동아시아 문학사의 최고 천재들이 지은 책인데 가장 낮은 등급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어찌어찌 하여 관리자와 함께 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어, 책 한 권을 빼 보았다. 그런데 책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었다. 너무나 괴이한 일이라 물어보니 관리자가 한 말은 ‘후세에 반드시 지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했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이라는 것.

그 책은 붉은 색 비단으로 입혀져 있는 걸 보니 최고의 책이고, 이미 제목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책을 만져본 사람은 제목만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홍길주가 상상하는 신선들의 도서관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인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이 그 신선들의 도서관에 보관될 붉은 비단의 최고의 책을 쓰고 싶은 것이리라.


아직 쓰지 않은 책은 누구나 갖고 있는 책은 아닐까?

그 책을 쓰기만 한다면 붉은 비단이나 노란 구름 무늬 비단, 자줏빛 노을 무늬 비단으로 만들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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