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인지 가짜인지 흔들리는 이 때
제5차 청문회에 온 국민이 기다렸던 우씨가 등장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AI와 함께 국가적 혼란 속에서 많은 이들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의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의 결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준의 결핍은 필연적으로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하는 미시적 기준으로 변화하고, 이러한 기준은 필요성과 관심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필요성은 정보에 대한 수집욕을 말하고, 관심의 유무는 말 그대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지난 22일 5차 청문회 속에서 온 국민들은 청문회 의원들의 질의를 보면서 답답함과 엉뚱함을 다소 느꼈을 것이다. 필자가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SNS의 온갖 반응들 중 우씨에 대한 옹호와 질의를 받는 이들에 대한 옹호 때문이다.
이는 나중에 더 자세히 쓸 주제 중 하나인 "맥락 삭제"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맥락 삭제란 개인이 개인의 생각의 흐름 속에서 상대가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 전제하고 일부분만 말하는 경우를 뜻한다. 어쩌면 미디어 매체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의 배우 김유정의 무대 인사 중 짧게 자세가 무너진 사진이 인터넷에 돌자, 그의 인성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됐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김유정의 태도가 그렇게 불량해 보이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우선, 맥락 삭제를 말한 이유는 의원들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청중들에게 그들의 질문은 우습기도, 어이없기도 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의 질문 수준이 파악된 청중들은 오히려 우씨의 당당하고 합리적인 태도에 대해 설득되기 시작한다. 우씨의 답변과 조 대위의 태도에 있어서 진정성까지 느끼는 것 같다. 마치 무죄한 사람의 모습처럼 인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아렌트는 흔히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아이히만의 악마성에 주목했다. 그녀는 나치의 만행 속에서 학살이 이뤄지는 과정 속의 부속 역할을 한 아이히만에 대해 지적했다. 또한 관료제 안에서 벌어지는 악의 합법성, 선악의 윤리적 기준을 제쳐두고 합법성이 학살을 당연하게 진행시켰음을 지적한다. 학살을 허가하는 행정적 승인은, 물리적으로 학살을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료적으로, 행정적으로 그들의 학살행위를 합법적 행위로, 더불어 신의 심판으로 승격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히틀러의 독재와 그들의 만행을 긍정한 것은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고, 독일의 대략 90% 이상의 교회들은 정부에 힘을 싣었다.
많은 이들이 아이히만이 법원에 출두했을 때, 그의 모습을 악마와 같은 모습이나 비열한 모습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신사답고 깔끔한 외모였다. 마치 옆 집에 사는 친절하고 자상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은 자기 역할에서 할 일만 했을 뿐이라 말한다.
관료제 속에서 자라는 이 악마적 요소는 관료제 속의 적법성 속에서 자라난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현재 우씨와 아이히만의 입장을 다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청문회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양심의 문제가 아닌, 그 자리에서 충분히 소임을 다했다는 확신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리한다. 악의 평범성은 선악의 대치 구조가 아닌, 오히려 우리 삶을 이루는 곳에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악의 모습을 일컫는다. 어느샌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함이 덮어 씌우기 시작했다.
이렇듯 기준의 부재와 맥락 삭제의 세계는 서로를 향한 신의를 가볍게 한다. *혼밥, 혼술이 대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청와대로의 우병우'를 경험했다. 20세기 최악의 비극의 흔적을 이 시대 다시 경험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