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은 무한한 갈등의 공식이다.
최근 여성주의성향을 띤 영화《두개의 선》을 보게 됐다. 영화는 남성중심적인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결혼제도에 반대해 '비혼'을 주장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담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새로운 변화 속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필연적인 갈등을 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정상이었던 것은 정상으로 변화되고, 정상이었던 것은 비정상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 이치는 단순한데, 다수와 소수의 문제인거다.
영화《두개의 선》에서도 기존의 결혼제도가 주는 당연한 부담감들, 결혼제도에 편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그들의 용기와 갈등을 고스란히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비혼'이다.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미혼'이라는 표현은 마치 결혼을 당연히 이뤄야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기에,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 못하는 성소수자들에게도 결코 좋은 표현은 아니다. 그렇기에 미혼이라는 표현보다 비혼 운동을 하는 거다. 사랑을 하되, 결혼을 하지 않는 동거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혼의 문제는 단지 사회적 의식 문제 뿐만 아니라, 제도적 문제가 있다. 영화 속에서의 두 인물도 아이의 출생신고서 작성에 있어서 제도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곤란한 상황까지 발전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가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더불어 주변의 시선도 철이 없다느니, 정신 못차렸다느니 편견으로 가득하다.
필자는 글 제목을 '정상과 비정상'이라고 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개념은 형상없는 표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호한 타겟을 가지고 단순화하는 아주 게으른 구분은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 옳음과 그름이다. 물론 시대는 많은 경험을 통해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갈등과 함께 변화될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도는 안정과 변화에 대한 대치이기도 하다. 변화가 요구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대에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독 미정과의 대화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결혼과 비혼, LGBT들의 고충들과 편견과 존재자체가 부정되는 사회를 비판함을 느꼈다. 필자는 LGBT에 속하지는 않지만, 일반적 가정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최근의 남성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서로의 입장의 완전한 이해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LGBT들의 가정 상처나 친구들에 대한 아픔, 폭력들만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사회에서 말하는 평범한, 일반적인 가정에서 즉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알코올중독의 기억만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온 갖 어려움을 짊어진 어머니의 모습, 영화나 드라마의 모습 속의 이상적인 가족은 모습은 아니었다.
정상, 비정상의 구도는 오로지 다수에 속해있고 싶어하는 이들의 결핍이 담긴 공식이다. 무엇이 일반적이며, 무엇이 정상적인 것일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이면에는 전체주의적 폭력성 내재되어 있다. 어쩌면 레비나스가 타자의 범위를 신의 범위와 마찬가지로 무한으로 상정한 것은 옳을지 모르겠다.
자기 외의 것들에 대한 무지, 전제의 결핍은 타자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전제가 무의미해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