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블랙리스트'라는 이름 아래에 권리를 박탈당한다.
영화 <트럼보>는 영화를 즐기는 이라면 알 수 있는 <로마의 휴일>, <브레이드 원>의 작가 달튼 트럼보의 생애를 그린다. 영화의 배경은 세계대전 이후 미국 안에는 색깔론이 유행하는 시기다. 20세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린 사건이었던 전쟁은 이상론과 낙관적 진화론, 즉 앞으로 인류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긍정적 발전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을 꺾어버린다.
이상과 현실의 만남은 언제나 혼란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가상의 악을 만들어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 생각하는 법이다. 성급한 일반화와 절대화는 아무 죄 없는 이들을 악으로 정죄하는 과오를 겪게 된다. 그런 과정 속에 할리우드의 많은 예술가들과 배우들은 '예술가 블랙리스트'라는 이름 아래에 권리를 박탈당한다.
맞다. 여기서 달튼 트럼보도 있다.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잘 나가는 각본가이며 부자이다. 그런 그에게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일이 끊기고, 보수당과의 소송에서 패배해 감옥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게 됐다. 다신 그의 이름을 가지고,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다른 이들의 이름을 빌려 글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작품은 <로마의 휴일>이다.
필자가 <로마의 휴일>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잠들기 전 로마의 휴일을 5분만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5분이 크레디트까지 연장되는 경험을 했다. 영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가 주는 몰입감은 요즘의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보다 강렬했다. 내 인생영화 중 하나다.
요 몇 년 간의 정치적 사건들 중, '예술가 블랙리스트' 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예술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의 만행이 드러난 것이다. 사실 이런 억압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금지곡이나 상영금지를 받은 많은 매체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인들의 의견들이 나노화된 이 세계에서 개인의 표현 억압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름 아래에 블랙리스트라는 목록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이름'은 많은 의미를 가져온다. 좋든 나쁘든, '이름'이라는 그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을 없다. 트럼보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던 아들-딸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저 개인의 신념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영화는 60년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는 60년 후에도 유사한 사건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