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조언은 시대 적합한 행동으로 대체된다.
리바이어던, 성경 욥기에 등장하는 미지의 생물이며 '레비아탄'으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다. 기독사에서 선과 악의 대립적 존재로 천사와 악마를 구분해놨는데, 악마 중에 질투를 의미하는 악마가 바로 '리바이어던'이다. 종종 리바이어던의 해석으로는 고대 악어나 하마로 이해하곤 한다. 뭐 어찌 되었든, 영화 <리바이어던>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걸로 하자.
토마스 홉스는 17세기 철학자이자 당시 사회계약을 자세히 풀어낸 것으로 최초라고 한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이기적 본성을 지닌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한없이 추구하며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전개한다. 그는 서로 다투던 자연 상태 속의 인민이 그들 개인이 가지던 개인의 권리를 양도하여 주권을 창조했다고 보았다. 국가에 의해 개인의 권리는 억류되었고, 그의 방어와 좀 더 기능적인 사회를 위해 그의 권리가 돌아왔으므로 사회계약은 실용주의적 자기 이익 추구의 바깥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홉스는 국가의 이름을 리바이어던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국가가 사회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 산물"
(출처: 위키백과)
영화 <리바이어던>은 웅장한 음악과 함께 쓸쓸하면서도 무게 있는 배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쓸쓸하며 무게 있다는 것은 계절이 주는 냉기와 회색빛의 은은함이었다. 영화 속에서 일반적으로 도시가 주는 회색빛과 콜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의 회색빛은 다르게 다가온다. 평범하게 가계를 받아 살아왔던 집터에 시에서 별장을 짓겠다고 요구한다. 콜랴는 평생을 살아왔던 집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의 변호사 드미트리를 불러 시장과의 법적 공방을 준비한다. 드미트리는 시장의 약점을 잡아내어, 그에게 합의를 이끌어 내어 집을 내어주더라도 충분한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려 한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구분을 할 수 있다. 콜랴가 속하는 인민층, 즉 서민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과 시장이 속하는 고위층, 지역 관료제의 최상위층에 그의 모든 부패는 철저히 감춰진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가 있다.
시장 바딤은 디미트리의 말에 겁에 질려, 성직자를 찾는다. 자신의 두려움과 혼란에 대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지만, 성직자는 말한다. "권력은 신에게서 오고, 권력이 있는 곳에 신이 계시죠." 시대착오적 조언은 시대 적합한 방법으로 해결된다. 시장이라는 자리의 힘은 신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것도 아니다. 오로지 시민으로부터 이양된 권력이다. 그러나 바딤은 성직자의 말을 업고, 신의 권력인 양 부패를 당연하게 여긴다.
성경에서 욥기의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디에 내어놔도 부족하지 않은 의인 욥에게 악마 사탄은 신에게 말한다. "욥이 의인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갖고 있는 배경 때문입니다." 그러자 신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고, '죽음'만은 허락하지 않는다. 사탄은 욥에게 온갖 시험을 던지고, 욥은 가족도 친구도 재산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후에 신은 욥에게 나타나 모든 일들을 상세히 말해주고, 욥에게 새로운 가족과 재산을 주어 행복한 삶을 준다.
영화 속 성직자는 릴랴를 잃은 콜랴에게 위로의 말로 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의 이중성을 볼 수 있다. 종교에는 선과 악의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와 비진리에 대한 것이 존재하며, 이 구분 또한 오묘하다. 성직자는 일어나는 모든 상황의 원인과 의미를 묻는 이들에게 '신의 뜻'으로만 대답하고, 현 상황에 대한 대답은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을 죽이고, 감옥을 보낼 수 있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아내의 죽음이 콜랴가 살해자라는 누명으로까지 발전되었다. 혼자 남은 아들은 갈피를 잃었고, 그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보상과 집터 또한 사라진다.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드미트리가 믿고 있는 사실에 근거한 '진실'은 사라졌고, 오롯이 진리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