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시민 : 나, 다니엘 브레이크

한 명의 시민으로 존재하기 위해선

by Wenza

나, 다니엘 브레이크. 짧은 제목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스스로 존재하는 주체를 이르는 '나'라는 표현과 사회적으로 일러지는 이름인 '다니엘 브레이크'. 스스로 말하는 자신과 말해지는 자신을 뜻하는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영국 사회 속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필사적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 사회의 경쟁적인 분위기는 마거릿 대처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곤 한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리뷰에서 필자가 썼던 대처리즘을 가져온다. 짤막한 조각 정보이지만, 본 영화를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브이 포 벤데타》는 부패한 정부에 대항하는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다. 또한 잠재되어 있는 국민의 힘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작가 엘렌 무어와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DC코믹스의 만화가 원작이다. 원작은 대처주의(영국의 마가릿 대처의 정책)를 비판하면서 만들어졌다. 참고로 마가릿 대처는 영국은 경제적으로 발전시켰으나 노조활동을 제한했고, 경제정책에 집중한 나머지 복지에 대한 허술함과 동시에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빈부격차를 더욱 강화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수십 년 간 목수로 부지런히 살아오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온 심장병은 계속 해왔던 일들을 멈추게 한다. 그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생활비를 지원받으려면 질병수당을 신청해야 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질병수당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의사가 아닌 정부와 계약한 의료전문업체에서 진행한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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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손으로 모자를 쓸 수 있습니까?", "걷는 데 문제가 없습니까?" 다니엘은 형식적인 질문에 대답한다. "사지는 멀쩡하고, 심장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 그러자 평가관은 질문에 답할 것만 요구한다.


런던으로 이사 오게 된 케티(헤일리 스콰이어)는 취업지원금을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가지만, 익숙하지 않은 길 때문에 조금 늦게 된다. 늦은 이유를 설명하고 선처를 구하지만, 그들은 케티를 쫓아내고, 블랙리스트에 넣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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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원칙이라는 기준이 존재한다. 공적인 기관에서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본 영화는 원칙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주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 속의 관료는 개개인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하나의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최대한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귀한 가치를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원칙'이라는 기준은 '귀한 가치'를 무너뜨린다.


다니엘은 질병수당을 타지 못하고, 실업수당을 타기 위한 조건으로 지원서 쓰는 모임에 참여한다. 그곳의 강사는 실업자들을 모아 놓고, 말한다. '모두는 경쟁자'이며, '더 잘 쓰지 않'으면 낙오될 뿐이다. '한 명의 시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한 명의 시민'을 밀어내야 한다. 그렇게 다른 한 명의 시민은 빈민층에 더 가까워진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살아남는 이들이 적어지는 구조악의 모습을 고발하는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심장이 답답해진다. 그래도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다니엘 브레이크의 외침 때문이었다. 앞서 말한 제목이 주는 의미는 여기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그에게 사회가 주는 것은 일하지 않고 나태한 이미지였다. 더불어 그런 이미지를 새기는 사회가 옳지 못하다면, 그 구조를 농락하는 수밖에.


danielblake2.jpg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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