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자유 : 버드맨

by Wenza
당신은 이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나요?
그건 무엇인가요?
내가 지구 상에서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
(레이먼드 카버의 '레이트 프래그먼트' 中)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영화《레버넌트》의 감독으로 레버넌트 전에 《버드맨》을 연출했었다. 영화 내용은 과거 슈퍼 히어로 무비스타로 명성을 떨치던 리건이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재기를 이루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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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리건은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해리'라고 부르곤 한다. 일종에 트라우마가 강력하게 남아서 자신 안에 다른 자아가 자리 잡는다. 예를 들면, 내게 두려움과 혐오를 주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자녀가 아버지의 행동과 목소리를 따라 하는 행위를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을 구성하는 무언가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그 공허함을 채우는 행위다. 이처럼 리건에게는 다른 목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때 리건의 전성기였던 슈퍼히어로 버드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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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에서 리건이 초능력을 사용하는 장면들이 줄곳 나오는데, 이는 그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 과거의 영광에 빠져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신이 연극을 하는 이유도 동일하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연극계의 슈퍼스타인 마이크가 오게 됐고, 그로 인해 리건의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버린다.


영화 내내 리건의 모습 속에서 불안과 공포가 그려지고 있다. 이 두려움의 근원은 '책임감'이라고 생각된다. 그에게는 다양한 책임감이 있다. 첫째로 극단의 수장으로서의 책임, 둘째로 아버지로서의 책임, 마지막으로 슈퍼스타였던 그의 커리어에 대한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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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간에 리건의 딸 샘과의 언쟁이 나온다. 자신을 문제아로만 보는 아버지를 향해 샘은 폭언을 하는데, 그중의 리건의 현실상에 대해서 명료하게 나오는 대사가 있다.


지금 아빠가 연극에 목숨을 거는 건 아빠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잖아요


리건은 결국에 말하고 싶었던 것이 '과거의 영광을 벗어버리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 영광, 즉 버드맨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했을 때 자신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했다. 그러나 리건에게 버드맨은 목소리에서 형상,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렇다. 리건은 스스로를 받아들일 때 진실을 연기할 수 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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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버드맨》은 심리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화면 연출과 영화의 흐름도 의식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치 계곡에 떠있는 튜브처럼. 영화 말미에는 리건이 버드맨과의 분리된 자아가 아닌, 자기 자신 즉 스스로가 되어 버린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이 되는 현상. 이 부분을 영화는 '진실 Truth'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진실은 앞서 말한 자신을 직시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히브리 성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모세스가 광야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과의 직면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묻는 기록이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부른다.


나는 스스로 있는다


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표현이 Ego Eimi (나는 곧 나다)라는 표현이다. 스스로를 인식하는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버드맨은 이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생각된다. 어찌 보면 리건은 자신이 집착했던 모든 것과의 결별을 선언한 걸 수도 있겠다. 스스로 존재하는 이가 될 때, 자신을 더 충족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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