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쳐나오라 사람이여 : 브이 포 벤데타

by Wenza



제임스 맥티그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브이 포 벤데타》, 국내에서 제임스 맥티그는 본 영화로도 유명하지만,

매트릭스 시리즈나 가수 비가 출연한 《닌자 어쌔씬》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닌자 어쌔신은 본 영화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좋은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사실 과거에도 봤던 영화이지만, 오늘 올리는 이유는 선거일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선거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각 당에서 팟캐스트 방송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책임에 대해 강조하고 있고 옛날처럼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다시 기억될 영화라고 생각되는 것은 《브이 포 벤데타》다.



《브이 포 벤데타》는 부패한 정부에 대항하는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다. 또한 잠재되어 있는 국민의 힘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작가 엘렌 무어와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DC코믹스의 만화가 원작이다. 원작은 대처주의(영국의 마가릿 대처의 정책)를 비판하면서 만들어졌다. 참고로 마가릿 대처는 영국은 경제적으로 발전시켰으나 노조활동을 제한했고, 경제정책에 집중한 나머지 복지에 대한 허술함과 동시에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빈부격차를 더욱 강화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본 영화는 잡음이 많은 영화였다. 원작자 엘렌 무어가 영화화에 반대했었고, 원작을 훼손했다며 비난하고 심지어 DC코믹스를 떠나기까지 한다. 그러나 영화는 대처주의를 의식하지 않고, 21세기 초에 필요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이에 대한 브이 역의 휴고 위빙은 이렇게 말한다.


“앨런 무어 씨는 상당 기간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쓴 거였죠. 그건 대처주의 영국에 대한 응답이었고요… 영화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와 만화가 각자 독립적인 실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각 시대에 보이는 많은 문화콘텐츠들은 시대의 소리를 대변한다.

그중에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매체가 영화라고 생각한다.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은 보는 이를 통해 그의 신념을 인식하고 행동하게 한다. 사이버테러단체라 불리는 어나니머스 또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가면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화약 음모 사건 으로부터 시작된다. 브이는 1605년 11월 5일에 가이 포크스가 제임스 1세의 폭정에 화약 테러를 노렸지만, 실패했던 사건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당시 제임스 1세는 재혼 문제로 가톨릭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 즉 성공회를 만들게 된다. 더 나아가 강제로 성공회 개종을 요구했고,

응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처벌하기까지 이른다. 이에 가톨릭 혁명군이던 가이 포크스는 의회에 화약을 설치하려다 발각되어 죽게 된다.


브이는 이 사건을 예시하면서 정부가 옳은 일을 가장하면서 자신과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에 대한 복수를 원했다. 또한 그 안에 정의라는 개념을 끌어오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 말하고 있다. 《브이 포 벤데타》도 체제 안의 진정한 악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이에게 악한 면이 있다는 표현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독일 나치 장교인 아이히만이 모델이 되어 표현되었는데, 아이히만은 수만 명의 생명을 살해하는 데 있어서 단순한 행정처리로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죄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자신이 할 일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한나 아렌트는 관료제 안에서 상상도 못할 악행이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체제의 문제와 인간 사회의 본연의 악의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방송사 PD의 대사다.


"우리는 뉴스만 하면 돼. 꾸며내는 건 정부가 할 일이지."


진실을 좇아야 하는 언론사는 아무 의미 없는 소식지 역할만 하는 거다. 인체 실험장의 한 화학자의 대사이다.

브이에게 죽기 전에 하는 대사.


"언젠가는 당신이 올 줄 알았어요. 그들이 뭘 할지 난 몰랐어요.

저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 말고 인류가 변화되는 걸 원했어요."


그러자 브이가 말한다.


저는 당신이 하고자 한 일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한 일 때문에 온 거죠


화학자는 잘못된 일에 있어서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사실을 폭로했어야 했다. 한나 아렌트도 동일하게 말한다. 체제가 옳지 않은 일을 한다면, 그 자리를 떠나는 게 옳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결국에 본 영화의 절망적이면서 아픈 결정적인 이유는 이름 없이 죽어간 이로부터 혁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아무도 옳지 않음에 대해 저항할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의 공포정치에 의해 목숨을 사리는 거다. 그러나 영화는 브이를 통해 자기 자신이 상징이 되려 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돼요.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욕하면서 스스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이, 권력이 소중한 가치까지 짓이겨버리는 일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11월 4일 늦은 밤 의회 앞으로 온 국민이 정부에 대한 모여들기 시작한다. 영화 내에서 국민들은 온통 티브이 앞에서 등장하고 있다. 마치 우리네 모습 같지 않은가? 좋아요와 팔로우만 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TV 앞에서 정부를 비판하고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의회로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국민들은 TV 앞이 아닌 의회 앞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TV 앞의 공허함과 의회 앞의 충만함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것이 V의 신념의 결과였고, 국민이라면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 장면을 잘 보면, 죽은 이들까지 모여 있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희망이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이며,

사랑할 수 있는 담대함인 동시에

국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직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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