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서있는 자: 조커

by Wenza

Joker라는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경계가 모호한 존재를 의미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있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조커는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고, 예측 불가능하다.



몇 년 전 조커 단독 영화가 나온다는 얘기가 나왔다. DC 유니버스에서 무리하게 영화를 확장하다 무너지는 과정 중의 말이었다. DC 영화의 연이은 실망과 히스 레저 이후의 조커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히스 레저는 정의와 악의 경계에 서있는 조커를 완벽하게 보여줬다. 이후에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새로운 조커가 나왔으나, DC 유니버스가 붕괴되고 미흡한 스토리 구조에 비해 충분히 매력적인 조커 었으나, 단순히 소모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번 조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본 영화는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조커를 보면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광대는 본인이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가면'을 써야 한다. 아서 플렉은 정신병리학적 웃음이라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웃는 병이 있다. 이 부분에서도 아서 플렉은 원치 않는 가면을 쓰게 된다. 그는 행복하지 않을 때 행복해야 하고, 슬플 때도 원치 않는 웃음이 그를 망치게 된다. 무언가에 소속되길 원하고, 인정받길 원하던 아서는 깨닫게 된다.



그의 감정과 그의 외모가 하나가 될 때, 그는 조커가 된다. 그의 행동과 말은 세상을 흔든다. 그 무엇도 그를 정의할 수 없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 본인이 정의를 정의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정의를 정의한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정의를 정의하는 말은 더 이상 정의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모두가 기준이 된다면, 사회가 쌓아놓은 룰은 필연적으로 모호며 흐려진다.


논란이 될 수 있겠으나, 경계에 서있는 건 조커뿐이 아니다. 과거에서부터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닥쳤을 때 하늘의 뜻을 묻곤 했다. 상황이 긍정적으로 풀리면 감사를,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원망 혹은 시련이라 자위한다. 경계에 서있는 건 '신'만의 권리였다. 신은 어느 진영을 선택하지 않는다. 도리어 신을 믿는 이가 진영을 선택하여 본인의 편이라 주장한다.



조커는 진영을 의식하지 않는다. 누구도 평가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 거울이 계속적으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친절하게 대하면 친절하게, 못되게 대하면 못되게 군다. 조커는 진영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모두에게 거울이 되었던 신의 역할의 현신을 보여준다. 더불어 누구나 조커가 될 수 있는 세상, 누구나 경계에 서있을 수 있다며 보여준다.


그가 춤추는 장면은 마치 접신한 무당의 춤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투영하고 모든 것을 보여준다. 본 영화는 누구나 조커가 될 수 있는 세상, 경계에 서있는 존재를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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