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얘기다 : 신의 은총으로

<두 교황>은 이미 알고 있었다.

by Wenza

다 아는 얘기다. 가톨릭 내부에서 성추문 성폭력에 관한 스캔들은 역사적으로 계속 진행되어왔다. 맞다.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더럽고 추악한 모습은 감춰지고,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만 남는다. 더불어 권력까지 있는 역사적인 집단은 더더욱 그렇다. 사실 어느 집단이든 동일하다. 불교계는 개신교계든 스캔들은 끊이지 않는다.



동의하는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글을 정독하길 권유한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감춰져서는 안 될 일이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메시지였다. '자극적인 사진을 연속해서 보게 되면, 그런 자극이 평범함으로 변화한다' 이러면서 차 안에서 죽은 듯한 사람에 관련된 사진을 연속해서 놓은 작품이었다. 자극이 평범함으로 변화될 때, 우리는 그러한 자극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우리는 가톨릭 내부의 고질적인 신부들의 성범죄도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추악함을 평범하게 여길 수 있다.



자극은 자극이다. 결코 평범한 현상이 아니다.


영화는 최초 고발자인 알렉산드르 게렝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과거 자신을 성추행한 신부가 아무런 문제 없이 사제직을 하고 있으며, 여전히 아동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교구 심리학자와 상담 끝에 프레나 신부와 대면하게 된다. 알렉산드르는 자신의 트라우마의 원인과 마주하게 되는 것을 긴장하고 망설인다.


마침내 마주하게 된 프레나 신부는 예상과 달리 평안한 표정이었고, 알렉산드르는 그의 언행에 대해 당황했다. 그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이 성추행했음을 인정했고, 인생의 오점이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자신은 소아성애를 갖고 있는 환자라고 주장하며 어쩔 수 없는 상태라 뻔뻔하게 말한다. 알렉산드르는 그의 자백에 맥이 빠졌고, 분노했다. 영악하다. 그는 공소시효가 다 된 일인 것을 알았고,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까지 인정한다. 그리고 그는 용서를 구한다.



'악의 평범성'
아렌트는 흔히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아이히만의 악마성에 주목했다. 그녀는 나치의 만행 속에서 학살이 이뤄지는 과정 속의 부속 역할을 한 아이히만에 대해 지적했다. 또한 관료제 안에서 벌어지는 악의 합법성, 선악의 윤리적 기준을 제쳐두고 합법성이 학살을 당연하게 진행시켰음을 지적한다. 학살을 허가하는 행정적 승인은, 물리적으로 학살을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료적으로, 행정적으로 그들의 학살행위를 합법적 행위로, 더불어 신의 심판으로 승격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히틀러의 독재와 그들의 만행을 긍정한 것은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고, 독일의 대략 90% 이상의 교회들은 정부에 힘을 싣었다.

많은 이들이 아이히만이 법원에 출두했을 때, 그의 모습을 악마와 같은 모습이나 비열한 모습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신사답고 깔끔한 외모였다. 마치 옆 집에 사는 친절하고 자상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은 자기 역할에서 할 일만 했을 뿐이라 말한다.

관료제 속에서 자라는 이 악마적 요소는 관료제 속의 적법성 속에서 자라난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현재 우씨와 아이히만의 입장을 다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청문회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양심의 문제가 아닌, 그 자리에서 충분히 소임을 다했다는 확신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리한다. 악의 평범성은 선악의 대치 구조가 아닌, 오히려 우리 삶을 이루는 곳에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악의 모습을 일컫는다. 어느샌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함이 덮어 씌우기 시작했다.
필자의 글 "청와대로의 우병우" 중에서...


과거 초대 기독교 수도사들은 악마와 대적하기 위해 예수가 광야에서 겪었던 시험을 근거로 마을 외부의 광야로 떠나 악마와의 전쟁을 하러 갔다. 허나 대부분 짐승들에게 죽거나, 도적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혹자들은 광야에서 수행을 하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들의 깨달음은 고대 수도원 주의의 지식으로 아직까지 이어져 온다. 그들은 광야에 가서야 악마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내부에 있음을 깨닫는다.


중세 교회에서는 사제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미사 또한 라틴어로 진행하기에 교회 안의 교리나 내용은 사제가 아니었으면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폐쇄적인 교회보다 더욱 폐쇄적인 곳이 수도원이었고, 더욱 거룩하고 성스러워야 하는 곳은 욕망과 재물로 타락한다.



본 영화에서 프레나 신부와 바르바랭 추기경의 모습에서 악마성이 발견된다. 아이히만은 죄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이 대학살의 결정 문제를 단순한 행정처리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프레나와 바르바랭의 악마성은 범죄를 알면서도 방조한 것이다. 이는 결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


가톨릭이 주장하는 보편적인 교회는, 누군가의 실수에 의해 보편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버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순히 "쟤네는 원래 그러잖아"라며 우리 안에 갖고 있는 프레임으로 가볍게 보고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죄악은 기억되어야 되고, 그 죄악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가톨릭의 성범죄 은폐는 프랑스뿐만 아니다. 최근의 미국에서 신부의 성범죄에 대해 고발하는 영화 <스포트라이트>도 본 영화와 다르지 않다. 신부들은 자제력을 잃고, 아이들을 향한 왜곡된 성적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물론 모든 신부들을 향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가톨릭은 항상 은폐해왔다.


영화와 가톨릭 내의 성범죄 자료를 찾다가 결코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http://m.pressian.com/m/m_article/?no=46521#08gq) 꽤 오래된 기사라 정확한 사연은 모르겠으나, 한국 가톨릭 또한 아동 성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시사한다.


범죄가 발생하면 그에 따라 처벌과 책임을 묻는 게 당연지사. 허나 은폐되는 사실과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더불어 권력이 있는 집단일수록 더더욱 은폐하기 쉬워진다. 피해자들의 호소가 미디어로 보이고, 수없이 사라진다. 변하지 않는 것에 집착할수록 개인은 소외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사과하는 게 이기는 거야"라는 조언을 종종 들어왔다.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말은 결코 피해자를 위하는 표현이 아니다. 가해자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프레나의 용서를 구하는 말과 바르바랭의 인터뷰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죄책감을 덜어내고, 닥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영화 <두 교황>은 <신의 은총으로>를 의식하는 영화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두 교황>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전체적으로 평가가 좋고, 힐링 영화라는 평이 대다수다. 영화 <두 교황>은 교황의 인간성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그리고 있으며, 그들의 방법은 '용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본 영화보다 먼저 개봉해서 흥행했다는 사실. 영화 <두 교황> 속에서 베네딕트는 가톨릭 내에 있는 범죄를 은폐했음을 고백한다. 사제여도, 교황이어도 삶의 오점이 있고, 실수하는 것에 대한 사건들에 대한 변증론적 영화라 생각이 든다.



역사가 오래될 수록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 옛말에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라 했는가? 쉽지 않다. 벗어나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 마지막 알렉산드르의 아들이 그에게 묻는다. "아직도 신을 믿으세요?"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할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는 가톨릭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정의는 집단 안에서 드러나야 했다.



1970~1990년 -리옹 교구의 프레나 신부가 설립한 보이스카웃 그룹에서 피해자들, 부속 사제로 활동 à 프레나 약 70명의 아동 대상으로 성범죄
1990~1991년 - 프랑수아 드보르 부모로부터 아동 성폭행 사건 보고 à 프레나 신부 자백 à 트라우마/2차 피해 염려로 고소 포기
2002년 - 바르바랭 추기경 리옹 대교구장에 취임 à 프레나 직접 자백 à 묵인
2014년 - 프레나 신부가 리옹에서 아이들 교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알렉상드르 게랭은 교회에 문제제기 편지 보냄
2015년 - 첫 고소(알렉상드르 게랭) à ‘라 파롤 리베레’ 설립 à 프레나 신부 면직 처분
2016년 초중반 - 공소시효 남은 피해자 대상 아동 성범죄 사법적 조사 개시 à 바르바랭 추기경 2014년 이후 사건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
2016년 중후반 - 프레나 신부 수사 중이나 무죄 추정의 원칙 혜택 받는 중, 바르바랭 고발 의무 위반 증거 불충분 불기소 처분 à 피해자 측 재정신청
2017년 - 바티칸 소속 성직자들의 참석 여부와 관련해 추기경 요구로 재판 여러 차례 연기
2018년 - 법 개정(공소시효는 성인이 된 후 20년에서 30년으로,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학대 신고하지 않는 것 역시 범죄로 간주)
2019년 3월 7일 - 바르바랭, 범죄 은폐/타인을 위험에 빠뜨린 죄로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판결
2019년 3월 18일 - 바르바랭, 프란치스코 교황 만나 사임 의사> 항소심 결과 발표 때까지 사표 수리하지 않음
2020년 1월 - 프레나 신부의 형사 재판, 바르바랭 추기경의 항소심 진행 예정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70

-2016.04.13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70910058300081

-2017.09.17 기사


라 파롤 리베레 홈페이지

http://www.laparolelibere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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