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한 필요악 : 시카리오

by Wenza

시카리오, 영화 시작에 제목의 뜻을 알려준다. 이는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저항한 유대 독립운동가들을 말한다. 이들의 운동은 당시의 유대계층에서도 과격하고, 암살자들 단체였다. 이들을 성경에서는 '열심당원'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지나가는 로마군인들이 허술한 틈을 타서 그들을 살해했고, 군사적인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되찾고자 하는 단체였다. 이들은 AD 66~70년경 로마제국의 티투스 장군의 지휘 아래 약 3년간 저항했으나 결국에 패하게 되었고, 그 후로 유대인들에게 남겨진 것인 현재 남아있는 통곡의 벽이다.


이들의 공동체성과 집념은 전설처럼 남아있는데, 그들은 저항에 대한 패배가 확실해진 후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죽이는 방식을 반복해서 마지막 한 사람은 자결하는 방식으로 로마군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들은 더러운 로마의 손에 죽임 당하는 것까지 거부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암살자 단체였고, 영화에서는 시카리오라는 표현은 멕시코에서의 암살자들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조직들은 많이 있다. 이탈리아의 마피아도 있고, 일본의 야쿠자, 그리고 멕시코의 카르텔을 말할 수 있다. 본 영화는 카르텔의 수장을 암살하는 과정 속에서 불법과 정의, 즉 옳은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몇 년전에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굉장히 유행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지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는데, 그 책은 정의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관점을 소개해주고 있다. 결국 공동체주의에 가까운 센델의 입장은 공동체 중심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정의라는 열린 개념은 다수와 소수의 입장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선과 악이라는 대립은 의미가 열려버린다는 거다.



본 영화는 학살자들을 암살하기 위해 약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FBI 요원인 케이트는 카르텔의 수장을 암살하는 작전에 투입하게 된다. 그 팀 중에 정체불명의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가 알렉한드로이다. 그는 카르텔에 대해 꿰뚫고 있으며 작전에 방해가 되는 인원에게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알렉한드로는 가족들과의 만찬 중인 카르텔 보스를 만난다. 그 때, 보스와 알렉한드로의 대화는 대략 이렇다.

Alex "매일 밤, 넌 가족을 몰살하지. 그럼에도 여기 앉아 식사를 하는군"
Boss"널 여기로 보낸 놈들은 다르다고 생각해? 우리가 누구한테 배웠을까?"
"네 아내가 네가 이런 일 하는 것 보면 좋아할까?"
"내 딸을 잊었군"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네"
"나는 있어"

영화에서는 보스 말처럼 정의라고 칭하는 이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카스텔의 악행이 합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름돋고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는 그들이 살해하는 데있어서 "개인적인 감정"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명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이익의 수단으로써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살인도 이유없는 살인은 없다. 그러나 본 영화는 이유없는 살인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악을 없앨 수 없다면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어두운 면을 직면한 케이트는 '옳음'의 기준에서 방황하게 된다. 자신이 배우고, 경험했던 메뉴얼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일은 카르텔뿐만 아니라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작전이 끝마치고, 알렉한드로는 케이트에게 찾아가서 서류를 들이민다. 모든 작전에는 규정 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서명을 하라는 강제다. 여기서 그녀는 강제로 서명하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그녀조차도 '옳음'보다 죽음의 두려움이 가치강화된다. 그녀의 총구가 내려가는 이유가 자신이 옮음의 신념보다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 때문일 거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다. 이 사회를 유지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며, 힘을 실어주는 이도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카르텔의 악행을 영화는 현 사회의 돌연변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악의 모습처럼 있으니 말이다.


필요악을 언급하는 순간 정의는 사라진다. 다수의 공동체를 위한 시스템을 위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영화 저변에는 사회에서 만들어낸 돌연변이들의 가정들이 수도 없이 무너져 내린다. 마지막의 카르텔 보스의 가족을 살해하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유대의 시카리오들은 제국의 힘에 저항하며 생긴 세력이다. BC 2세기 경 로마 제국은 유대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제국에 대항하여 마카비라는 이름으로 불린 유다는 예루살렘의 부활을 꿈꾸며 대항했으나, 수년 후에 패배하게 된다. 이와 다르지 않게 AD로 바뀐 시간에도 로마황제는 유대 성전에 황제의 상을 세웠다. 유대인들은 분노했고, 민족의 정체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옳지 않은 일로 인해 옳지 않은 일을 한다. 그것이 시카리오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모세율법의 선언은 그렇게 그려진다.


정의를 위한 필요악은 말 뿐인 껍데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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