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을 창조하다 : 스포트라이트

by Wenza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작품상을 받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이다. 본 영화는 미국의 3대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이 가톨릭 보스턴 교구 소속 신부의 아동 성범죄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려내는 영화다. 여기서 스포트라이트팀은 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새롭게 온 편집장이 시작한 이 취재는 피해자 한 사람으로부터 교회 내의 어둠까지 밝혀버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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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이 아니라면 가톨릭과 개신교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사실은 개신교인들도 대부분 잘 모른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다른 점은 '사제'개념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의 제의는 제사장이 필요 없어지는데, 그 전에는 신부만이 신과의 대화의 다리가 였다. 그래서 예배가 성립이 되거나 기도가 성립이 되려면 중간 다리인 사제나 교회의 권위로 인정한 기도문이 필요한 거다. 그러나 중세 말에 재벌들과 성주들의 기부로 수도원에 재산이 쌓이게 되고, 도시마다 성당 건축에 대한 대결 구조가 생겨서 국민들의 세금으로도 부족하게 된다. 교회 건축을 위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면죄부가 판매되기 시작하고, 더 이상 죄를 짓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재산에 비례하게 되었다.


20141010153230_8799.jpg 네덜란드 화가 J.H esinghs 의 신성로마제국의 국회석상의 루터, 1521


청렴하고 무소유의 원칙을 지켜야 할 사제들은 축적된 재산에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만연해지고, 성서의 내용 조차 사제가 아닌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성서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과 교회 내의 부패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쉽게 터트리지 못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이전에도 개혁의 흔적은 있었으나 개혁이 이뤄진 적은 없었다.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성당에 면죄부 반박문을 붙이게 된다. 이후 개신교의 예배는 사제 없이도 성립이 되는 경우로 변화하게 되고, 이를 모두가 신과의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만인 사제"라고 불렀다. 즉, 모두가 사제의 권한이 있으니 예배가 가능하게 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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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링크는 2002년 당시 사건 이후 한국에 보도된 기사 전문입니다.

http://www.pressian.com/ezview/article_main.html?no=22773

"........ 가톨릭 사제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이처럼 확대되어온 데에는 바티칸 교황청의 미온적 태도에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미국의 성추행 사건을 '미국 내 문제'로 치부했다. 그러나 유사한 사건이 계속 늘어나자 바티칸의 소극적 태도에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바티칸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세계 2차 대전 중 일어난 홀로코스트(대량학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교황과 비교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그중 성직자들의 사건들이 부각되고 있는데, 성직자들의 성범죄에 있어서 교단이나 종교계에서 무리하게 감싸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단체가 덮고 있고, 소외된 이들을 더욱 소외되게 만드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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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은 이런 글을 올렸다.

교회에 몸을 파는 이들이나 노숙인들과 같이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이 없는 것은 교회가 예수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


종교가 역할을 하지 못하면, 종교 외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성서의 창세기에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빛이 더 먼저 존재했으리라 생각하곤 하는데, 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 안에서 빛을 끄집어내어 창조한다.

이 영화를 종교의 폐쇄성과 도덕성에 대한 폭로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 권력과 지위로 힘없는 이들을 살해하고 억압한 사실을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덮는 사회 전체의 도덕성에 대한 회의와 저항의 소리다. 언론은 어두운 곳에서 빛을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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