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시간과 기억을 덮는다. 수년전 공산당에 잡혀간 남편 루옌스는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 펑완위는 매월 5일 항구로 마중을 나간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루옌스를 위해. 그러나 그녀의 기억은 수년전에서 멈춰있었다. 남편 루옌스는 돌아왔지만, 펑완위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에게 해를 입혔던 공산당원으로 오해한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상황인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이는 우리에게 끝없는 절망을 겪게 한다. 역사의 상흔으로 강제 이별하게 된 부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곳은 없다.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그는 피아노조율사로, 편지읽는 남자로, 리어카운전자로의 모습으로 아내 곁에 있는다. 망각하는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사람이 된다. 예전 광고에서 사랑은 변한다하고 했었다. 그러나 그건 이별하기 위한 합리화일 뿐이다. 사실 사랑하지 않는거다. 한 철학자는 열린 개념을 말한다. 고정된 개념은 논의하여 정의내릴 수 있으나, 열린 개념은 논의는 가능하나 정의할 수 없다고.
사랑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매시간 순간순간 변화한다.
루옌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