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의 경계가 모호한 순간이 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직면할 때마다 '혼란', '두려움'과 같은 갈피를 모를 감정들이 뒤덮는다. 영화《물고기》는 한 남성이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 흥신소를 통해서 찾는 데, 아내는 무당이 되어있었고 그녀를 찾기 위해 진도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더불어 찾아가는 여정과 동시에 이유모를 두 사람이 낚시를 하면서 서로 사색적인 얘기를 하는 그림을 대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분명히 봤던 장면과 대사를 다른 장소에서 동일하게 보여주고, 남편의 시체를 물에서 끌어올리는 모습을 남편 자신이 직면하게 만든다든지 말이다. 보는 이를 마음껏 흔들어 놓아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혼란스럽게 한 뒤, 마지막에 무당에게 친절히 설명을 듣게 된다.
몇 년 전 영화《노아》를 통해 실망한 부분은 배역들의 고민과 결정을 통해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엠마 왓슨을 통해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거야"라고 갑작스레 정리하는 장면을 봤었다.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보는 이들에 대한 이해를 제한시키고, 더 나아가 관객을 믿지 못한 행위다.
본 영화는 온갖 혼란을 조장하면서 뒤에 "사실 이런 거야"라며 말하는 듯하다. 이 모습이 어찌 보면 반전의 행위겠다. 그러나 앞선 화면 연출과 혼란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애써 마무리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또한 거친 음향을 통해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은 가중되고 있다. 이게 목적이라면 성공했다.
물고기라는 타이틀을 사용한 이유는 앞서 말한 낚시하는 이들의 대화 속에서 어느 정도 보여주는 듯하다. 대화 중에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 전에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혹은 희망을 바라보며 물지는 않는지, 아니면 그저 멍청해서 코 앞만 바라보는지의 주제로 말을 나눈다. 죽을 줄 알면서도 미끼를 무는, 눈 앞의 것만 바라보는 행위.
마치 영화는 우리네 모습을 물고기로 비유하는 듯하다. 앞에 있는 미끼에 눈이 멀어 사냥당하는 현실. 기이하게도 잡힌 물고기는 잡힌 후에야 말을 한다.
속았다
어쩌면 속고 속이는 잔인한 이기심을 말하는 걸 수도 있다. 남편은 충분히 이기적이었다. 이는 그의 굳어있는 표정 속에서 응축된 분노를 통해 자기 앞길을 막는 무언가를 향한 폭력성으로 드러난다. 영화도 말이 좋아 반전이지 속이는 행위 아닌가? 간접적으로 속이는 행위를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잘못됐다. 우리는 이미 많이 속고 있다.
영회 마지막에는 무당이 된 아내에게 빙의된 남편의 분노로 끝난다. 남편의 분노의 대상은 처음엔 아내였다. 그러나 후에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죽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속았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마 둘 다 일거다. 죽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고, 속았다는 사실은 아내보다 흥신소를 더 신뢰했다는 것 때문일 거다.
이렇듯 우리는 종종 눈 앞에 있는 것에 휘둘려 진정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회 떠지는 것같이 죽음이 다가서야 우리는 진실과 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