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종교를 구분할 때, 세계 3대 종교나 고등 종교든지 구분한다. 이는 굉장히 오만한 구분인데, 종교의 권력과 해당 종교인의 숫자에 근거한 구분이며, 종교 구조 혹은 교리의 복잡함이 근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일 합일의 논리는 단순한데, 인간과 신은 바로 연결할 수 없고, 신의 선택에 의해 한 매개자(무당, 사제, 목사, 주술사)가 인간에게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타 종교들과 무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개신교는 타 종교와는 다른 모습이 있는데, 모든 신자가 신과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확히 말하면 목사나 신부, 교회까지 없어도 가능하다. 개신교의 목사는 신과의 소통의 중재자인 사제가 되었고, 교회는 신당이 되었다.(사제 제도를 개혁한 프로테스탄트가 다시 사제 제도로 회귀하는 꼴) 오늘날의 교회들은 성전이길 원하고, 목회자들은 제사장이길 원한다.
굿은 사람과 사람이 아닌 무언가와의 연결통로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굿은 마을 구경거리였다. 지금처럼 영화나 연극, 공연의 역할을 만신의 굿이 하게 된 거다. 또한 과거의 문맹률은 상당했기에, 시청각적인 메시지를 담는 퍼포먼스의 발달은 필연적이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굿은 당시 서민들의 문화생활 중 하나였으며, 종교인 동시에 삶의 묵힌 때를 벗어버리는 예술이었다.
본 영화는 세미 다큐멘터리 장르로 만신 김금화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그녀의 일생은 한국의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 있는데, 산업화가 되고 무당, 즉 만신이 얼마나 형편없이 깎여 내렸는지 알 수 있다. 개신교 선교의 확대로 인해 미신으로 치부된 무교는 박해받게 된다. 또한 과학이라는 신앙을 통해 신비를 신비로 두지 않고, 관찰과 증명을 통해 더욱 무시되었다.
영화는 내림굿으로 시작해서 올림굿으로 마무리 짓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로써 한 편의 영화는 종합예술이자 하나의 굿 자체가 되어 신과 인간의 합일을 보게 했고, 더불어 스크린과 관객의 만남을 더욱 강화한다.
판소리나 굿, 연극들은 문자를 모르는 이들에게 명확한 메시지와 정서를 전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 교회의 예전도 마찬가지로 서민들의 문맹률이 높았기에 스테인스 글라스와 퍼포먼스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의 미사, 개신교의 예배 등 각종 종교예식도 마찬가지다. 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예식은 신과의 소통과 합일을 위한 하나의 전통이다. 기독교에는 성례전이라 불리는 거룩한 의식이 있는데, 그중 가장 원시적이며 근본적인 예식은 성찬식이다. 성찬은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마시며 예수를 기념하고 기억하며, 예수와 하나가 되어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룩한 의식인데, 이 또한 신인합일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만신의 굿은 어떠한가?
굿은 어떠한 도구가 되었든 간에 억울하게 죽은 소외된 이들의 한을 풀기 위한 거룩한 의식이다. 예수의 성찬식 또한 자신의 몸을 찢어 소외된 이들을 위해 주어진 것처럼, 굿은 죽은 이들을 위로하고, 산 이들에게 살 힘을 주는 거룩한 성례聖禮다. 만신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통로를 연다. 산 이와 죽은 이라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