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앞서 쓴 영화《공기인형》,《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감독이다. 아마 감독 이름보다 영화 자체로 익숙할 것 같다. 그는 차분하면서 서정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본 영화가 그의 영화 중에 가장 밝고 쾌활하지 않을까?
언젠가 일본 영화에 대한 생각을 인터넷 짤방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일본 영화나 드라마는 교훈만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점도 있으나, 마냥 공감할 수는 없었다. 사실 어떤 영화든 간에 '교훈'이란 게 없는 영화가 있을까? 교훈이라는 것은 주려고 하는 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 스스로 무엇을 느끼냐에 따라 다르니까.
최근에 봤었던 일본 영화는《심야식당》,《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였다. 서로 다른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주제가 있는데, 그건 일상 죽음 공감이다. 영화라 함은 비일상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위적-작위적이라는 건데, 드라마라는 장르는 인위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기분 좋은 영화였다. 일본 특유의 과장됨도 없었고.
필자가 생각할 때 영화의 역할은 하나의 탈출구라 생각한다. 비일상적인 판타지를 묘사하고, 관객은 더 끌리게 되는 건데, 일본의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은 일상 안의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영화 같은 경우에 힐링 무비라는 표현도 사용하곤 하는데, 현실의 삶이 녹록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리네 삶이 갈등과 문제의 연속이다 보니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죽음이라는 건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이라고 볼 수 없다. '죽음'이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인 사건이기에 관계 속의 정신적 상흔을 남기게 된다. 일종의 불행으로 여겨지는 거다. 그러나 본 영화는 '죽음'을 불행한 것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첫째 딸인 코우다 사치의 심경변화가 생긴 건 터미널 케어 병동을 듣고 나서다. 터미널 케어 병동은 죽음을 앞둔 이들을 준비시키고, 장례까지 봉사하는 전문 병동이다. 사치는 동료 간호사가 시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마음이 요동친다.
"사에키 씨가 아직 살아 있는 처럼 '고생 많으셨어요',
'여기가 많이 아팠죠?', '살살할게요.'라고 하면서 정성을 다했어."
보통 죽음은 모든 것과의 단절을 의미하곤 한다. 그러나 본 영화에서는 죽음은 단절이 아닌 관계의 연장이다. 이로써 산 사람과 죽은 이의 물리적이거나 청각적인 소통이 아니라 기억의 소통으로의 변환이 일어난다. 죽은 이의 마음은 기억을 통해 전해지고, 죽은 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거다. 죽은 이와의 소통은 공감으로부터 이뤄진다. 본 영화에서의 갈등관계는 서로를 공감함으로써 해소되고 있다.
본 영화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몇몇이 주인공이라기보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점. 주를 이루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뭐하나 쉽게 버려지는 인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 영화는 갈등의 문제에서 문제 자체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 해결의 중심은 개인에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성장드라마로 볼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모두가 주인공이다. 모든 갈등을 모두 해결하지 않는다. 이게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통해 행복감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공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