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개입의 무책임성 : 곡성

by Wenza

현혹, 무엇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에 대한 혼란의 표현이다. 본 영화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이고, 부활한 자신임을 증명하는 예수을 묘사하는 누가복음서 24: 37~40 를 인용함으로 시작하고 있다.


37.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지 않으냐?"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이셨다.



본 영화의 내용은 곡성에서 일어난 이유 모를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도중에 귀신의 짓이라며 무당의 도움을 받게 된다. 영화는 우리를 현혹하듯이 현실과 꿈의 세계 간의 경계를 허물어 극이 진행될 수록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마냥 긴장감이 지속되지 않고, 곳곳에 유머를 적당할 때 넣어둬서 진지하고 무섭기만 한 스릴러 영화와는 구분된다.



나홍진은 진실에 가까울 수록 멀어지는 과정을 그리는 듯하다. 종구는 사건의 결과를 보며,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원인을 찾은 듯 하면서도 도리어 희미해진다.


성경에는 욥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신과 악마의 내기의 희생되었다. 아무리 후에 보상을 받는다해도 그가 겪은 아픔과 상처와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물론 욥기가 신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당시 히브리 지혜문학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만. 초월자들의 내기는 영문도 모를 무고한 이에게 너무 잔인하다.



귀신든 딸을 고쳐보려고 무당 일명을 찾아간다. 그는 왜 자기 딸이라며 하소연하는데, 무당의 대답은 이렇다.

낚시를 하면 어떤 물고기가 낚일 줄 알고 하소?미끼를 물은 게 당신 딸일 뿐이요



복음서에 베드로는 예수의 축복을 받는데, 그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닭 세 번 우는 장면. 첫 시작의 복음서의 말씀. 내게는 신의 개입 자체가 주는 무책임성을 보이고자 한 것 같다. 중간의 신부의 입장도 그렇고.



우린 어쩌면 신이 개입해버린 세상 속에서 어찌된 영문도 모르고 살아가는, 떠다니는 바람일지 모른다. 우리가 선택하는 진실은 진실인지 아닌지 선택 후에야 알게 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선택한 이에게만 부여된다.



현혹, 현혹하다. 이 단어만큼 이 영화를 잘 표현한 단어는 없을 듯 하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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