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과거가 되고 있다 : 별을 쫓는 아이

by Wenza
2013, 언어의 정원 中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가장 최근 작품은 《언어의 정원》인데,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감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배경의 퀄리티 때문이다. 굉장히 섬세하면서 감성적인 색채를 사용하고 있으며 도심 안의 아름다움을 따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본 영화에서는 그가 만들었던 작품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왼쪽 상단은 2004년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오른쪽 상단은 2002년작《별의 목소리》하단은 아마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2007년작 《초속 5cm》이다. SF 판타지였던《별의 목소리》는 평범한 중학생이 지구의 운명을 짊어지는 이야기다. 마치 에반게리온을 연상케 한다. 아무튼 앞서 말했던 다른 작품들과 본 영화가 신카이 마코토스럽지 않다고 느껴진 이유는 과거형 판타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형 판타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러나 본 영화는 그의 모습보다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습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아가르타라는 신화적 아이템도 그렇고, 등장하는 신성한 동물들의 모습도 유사하다. 뭐 하나하나 딴지 걸면 끝도 없겠지만.



본 영화는 한 소녀 아스나가 산 언덕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이상한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헤매다 슌이라는 청년을 만나고, 그 청년은 지하세계인 아가르타에서 온 것을 알게 된다. 담임선생의 출산휴가로 인해 임시 담임으로 온 선생은 아가르타를 연구하는 아크 엔젤의 회원이다. 그는 슌의 흔적을 따라 지상으로 잠시 나온 슌의 동생 신을 추적하게 되고, 신을 슌이라고 착각한 아스나는 함께 아가르타로 내려가게 된다.



《별을 쫓는 아이》는 일본 신화인 이자나기의 저승까지 내려갔었던 사랑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살리기 위해 황천으로 내려가지만, 이자나미를 살리기 위한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황천문을 열지 않고 기다리고, 이자나미를 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자나기는 참지 못하고, 이자나미를 보게 되고 이자나미의 몸은 이미 썩을 데로 썩어 황천의 적응된 상태였었다. 이처럼 죽음에서 생으로의 기대를 가지고 선생은 아가르타로 떠난다.



영화는 이별로 아픔을 갖고 있는 이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아스나도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신도 자신의 형 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으며, 선생도 자신의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더불어 지하세계는 과거에 묶여 사는 세계이며, 지상세계는 아픔만이 가득한 세계다. 영화는 커다란 틀에서 볼 때 마치 심리학적인 치료 과정을 보는 듯하다. 자신의 아픔의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 심연 속에서 원인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것.



등장인물들의 아픔은 고독, 즉 외로움에서부터 시작한다. 외로움은 과거의 감정이다. 지금 닥쳐있는 현재를 놓치게 하는 과거의 감정인 게다. 우리네 삶은 한없이 괴롭고 잔인하다. 과거의 판타지에 목메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하다.


어쩌면 《별을 쫓는 아이》라는 말마따나 우리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별을 한 없이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원했던 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후회일 뿐이다. 현재는 한없이 과거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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