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부재

by Wenza

(이 글은 무척이나 주관적인 글이며, 객관적 통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가슴아픈 사건-사고들을 겪어 왔다. 갑작스런 사고들은 안일한 정부대책과 관료제의 한계성을 명확히 보여줬으며, 진실보다는 겉치레만 가득한 언론 보도를 질리게 보고 들었다. 더불어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다양한 민형사 사건들은 우리네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미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없이 많은 자연훼손으로 생명들의 터전은 사라져가고 있고, 온갖 질병들과 굶주림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우리는 동물 살해에 대한 연민을 SNS 상에서 자주 접하곤 한다. 주를 이루는 의견들은 동물을 학대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론과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육식론이다. 전자같은 경우는 인간의 내재되어있는 폭력성을 혐오하지만 그에 따른 행동력은 부재한 입장이고, 후자는 폭력성을 인정하는 하나의 합리화라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살해 사건에 대한 기사에 대한 댓글들도 다양한 반응이 있으나 주로 추천을 받은 댓글을 심판론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살인자의 신상 털기에 그의 주변 지인들까지 피해를 입는 사고까지 발생한다. 이건 무엇을 위한 분노이며, 행동일까?


우리는 누군가가 고통을 받으면 심판에 눈이 멀어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 또한 피해자들을 위한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분노를 배설하는 듯한 성향의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나는 이 문제를 타인에 대한 '공감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공감의 부재는 행동의 부재를 낳게 된다. 그조차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정신쓸 만큼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을 돕는 행위가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공급과 수요가 적당하게 균형을 이뤄야 도움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은 키보드 자판 누르는 것으로 자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로 그 범위 내에 있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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