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현 현상 : 예술의 가치(4)

by Wenza


앞서 글에서 나는 장국현의 행동과 작품이 예술의 범위에 있으며, 예술 자체로는 인정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한반도의 소나무를 알리려는 취지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건 구도에 맞지 않기에 소나무를 베면서까지 사진촬영을 한 사실이다. 그의 행동이 세상에 밝혀지기 이전에도 그는 약 3년 간 소나무를 무단 벌목한 죄로 약 500만 원의 벌금을 물었었다.


장국현 작가의 전시와 사진작품에 있어서의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면은 많은 환경단체와 사진계에서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사진 자체를 지적하는 것인가? 장국현을 지적하는 걸까? 양쪽 모두 일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술의 전당이 부정적 여론을 의식하여 전시 거부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앞서 디키의 분류적인 예술은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은 작품이나 인물을 말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예술의 전당은 그의 사진작품과 작가의 커리어에 대한 거부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에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데, 예술계나 사진계, 혹은 미술비평계에서도 그의 예술성에 대한 문제에 논란이 없다는 의미라는 거다. 그에게 문제 되는 이유는 그의 윤리성인데, 이 부분에서 나는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법을 제시했다. 사죄의 뜻으로 전시를 중단하는 방법인데, 이미 그는 전시를 통해 사죄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필자는 장국현의《천하 걸작 한국 영송전》을 다녀왔다. 전시기간 동안에 환경단체에서 1인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데, 내가 도착할 때에는 없었다.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봤으나, '방금까지 계셨는데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내가 그의 전시를 1만 원이나 지불하고 보러 간 이유는 적어도 그를 비판하는 데 있어서 그의 사진을 봐야겠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나는 사진 예술은 결과물이 주는 아름다움보다 작가가 가진 철학에 대해 더욱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시간의 포착이며, 동시에 작가의 정신이 과정 속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비평을 장 루이 쁘아트방 이라는 프랑스의 미술평론가가 아주 멋들어지게 작성한 것이 전시장 입구에 보이고 있는데, 그의 평가 중에 기억나는 것은 "사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장국현이다.


전시장은 2곳으로 되어 있고, 넓은 장소에 다양한 소나무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소나무 사진 속에서 소나무가 갖고 있는 힘이 느껴졌다. 특히 사진을 사람보다 크게 만듦으로써 소나무의 숭고미를 이끌어 낸다. 또한 기이하게 뻗어 나간 가지들은 내게 신비함과 웅장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겨울의 안개에 덮인 소나무의 모습은 마치 인상주의 회화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소나무에 대해 그보다 더 잘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짧다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약 10년 간 소나무만 찍는 전문 사진가다. 그의 행위에 대한 도덕성에 대한 비판은 매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한 예술성은 무시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는 옳지 못한 행위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소나무를 무단 벌목한 행위는 보는 이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그 사실을 몰랐다면, 웅장한 그의 사진에 매혹되어 우리는 그를 칭송할 것이다. 예술성은 관료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의 윤리성은 이미 바닥을 내리친다. 그는 사죄의 방법을 달리 했기에.


장국현 작가, 사람을 속이려 했을지라도 그가 촬영한 소나무는 속이지 못했다.


이익과 명예에 눈먼 자여.



장국현 예술의전당

장국현 현상(1)

장국현 현상(2)

장국현 현상(3)

장국현 현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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